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슥슥 Dec 31. 2022

22년도 연말 회고 : 루틴 편




D-Day 디데이

22년도도 오늘이면 끝이 난다. 31일을 맞아 회고 시리즈의 마지막인 '루틴' 회고를 해보려 한다.



1) 무엇을 읽었나?(독서)

2) 얼마나 들었나?(음악)

3) 꾸준히 행했나?(루틴)



올해 내 삶에 안착시키고픈 루틴은 무엇이었을까 질문해 보면 딱 두 가지였다. 읽고 쓰기. 

이유는 간단했다. 작년의 내가 질러 놓은 글 때문에.







부끄럼도 모르고 나는

21년 12월 20일 블로그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나의 실행력은 '무엇을 읽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 마음에 맺힌 문구들을 노트에 적곤 하는데 거의 대부분 그것들이 날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21년 12월 30일 브런치에 나는 이런 다짐을 했다.

내년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쓰기란 생각이 든다.





22년도에는 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들자.

이 단순하고 괴로운 목표는 그렇게 탄생했다.







매일 읽고 쓰기  

그리고

한 걸 매일 기록하기

둘 다 자신은 없지만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아무래도 이것뿐인 듯했다. 쓰고 읽는 건 어떻게든 의지로 한다지만 매일 기록은 남겨둘 도구가 필요했다. 작년에는 노션을 이용했는데 게으를 땐 이마저도 접속하지 않는 나였기에 올해는 변화를 주어야 했다.








대형 달력이란 게 있더라

그렇게 택한 게 '대형 달력'이었다. '연력' 또는 '포스터 캘린더'라 불리는 이것은 가로 76cm 세로 52cm 사이즈의 대형 종이 한 장에 1월부터 12월까지 모두 입력되어 있는 달력이다.

예시 ( 출처 : 쿠팡 )

연간 일정을 한눈에 볼 수도 있고 날짜 아래에 여유 공간이 많아 계획한 일의 실행 여부를 체크하기에 적합했다. 고민 없이 구매 후 침대 머리맡에 붙여두고 새로운 기록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기록이지만...

글쓰기는 빨간색, 독서는 파란색, 모닝페이지는 노란색. 이렇게 스티커를 구분했을 뿐인데 열을 맞추지 않아 전체적인 모양새가 지저분했다. 루틴 앱에서 제공하는 깔끔한 통계와는 다르게 정제되지 않은 어떤 날 것의 느낌.

그런데도 온라인 도구와는 다른 보람이 있었다. 무사히 도착점에 온 것 같은 안도감과 유사했다.








내 행동엔 패턴이 있었다.

스티커를 하루하루 붙일 땐 인지하지 못했는데 거리를 두고 보니 어떤 패턴 하나가 보였다. 그건 '지속성'이었다. 적게는 이틀, 많게는 10일간은 세 가지 루틴을 나름 이어갔지만 10일이 넘어서면 어김없이 고꾸라졌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꼭 누락이 생겼다. 매달 있었던 공백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요일로 치면 보통 주중엔 어떻게든 짬을 내 읽고 쓰다가 주말에 늘어지는 형국이었다. 당시엔 시간이 충분한 때에 도리어 쓰기를 미루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자책하곤 했는데 1년을 동일하게 보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게 나의 체력적/정신적 한계이지 않았나 싶다. (책 '게으르다는 착각'을 읽고 이렇게 인정하자고 결론 내렸다....)









3월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면서도 눈에 띄는 건 3월이었다. 유독 그 달만 뻥 뚫린 공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독서는커녕 글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도 기록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수기로 쓰는 주간 플래너의 첫 페이지 시작 일자도 3월 27일부터였고 블로그 포스팅도 3월은 2개가 전부였다. 기억은 이미 휘발되었고 기록도 없으니 한 달을 잃은 것 같았다. 다행히 자동으로 업데이트된 구글 포토 덕분에 조금 실마리가 풀렸다.


클라우드에 남겨진 3월의 사진들은 대부분 부수입 또는 업무 관련 캡쳐본뿐이었다. 추측건대 부업에 대한 회의감과 업무 피로 그리고 태생적 게으름이 한데 엉킨 결과였던 것 같다.








4월 다시 시작했던 건

완전히 힘을 잃어 의욕이 없을 때 문제는 늘 멘탈이었다. 자꾸 생각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터널에 빠지지 않게, 또는 빠져도 다시 나오도록 도와준 게 바로 아래 네 가지였다.


햇빛, 방 정리, 샤워 그리고 좋은 문장


무조건 튀어나가 햇볕을 쬐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것. 그것마저 힘이 들 땐 일단 샤워를 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문장이라도 읽는 것.

침대에 늘어져 있거나 유튜브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씻고 다시 해보지 뭐'라고 마음먹으면 한결 편하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형 달력이 내게 말해준 것

자기 계발 열풍인 시대라 디자인 깔끔하고 이용하기도 쉬운 루틴 앱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대형 종이에 손수 스티커를 붙였던 한 해. 나의 이 아날로그적인 면이 좀 남사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형 달력이 말해준 것들이 있다.


하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데 한계치에 관해서는 둔감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도달하면 부정적인 생각 속으로 쉽게 넘어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책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패턴화 된 기록을 보고 나서야 그런 나를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둘. '보이는 기록'은 의외로 힘이 셌다. 주말에 히죽대며 유튜브를 보면서도 눈앞에 떡 하니 있는 대형 달력이 늘 신경 쓰였다. 거기엔 '게을렀던 나'도 있지만, '열심히던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탈하게 행동을 이어갔던 기록을 째려보다 보면 마냥 누워있을 순 없었다. 열정에 불타오른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등 떠민 셈이다.



셋. 매일 읽고 썼던 이유가 부재했다. 올해 나의 목표는 말 그대로 '읽고 쓰는 습관' 그 자체였다. 무엇이든 읽고 썼다면 달력에 표시했지만 행위의 반복이었을 뿐,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목적이 없었다. '책 쓰기'라든지 '공모전 참가'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과부하였던 한 해라 욕심을 버렸던 것도 있다. 하지만 시간 부자인 내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갈 순 없었다.










그래서 2023년은...?

그런 의미로 내년은 읽고 쓰기를 이어가되, 작은 성취도 달력에 기록해 보려고 한다. 23년도에 해보고 싶어 적어둔 목록이 있는데 이왕이면 그것들이 달력에 기록될 수 있도록 움직여볼 생각이다.

이렇게 다짐을 공개적으로 적어두는 건 쓰면서도 영 쑥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일단 글부터 질러놓는 이유는 늘 그렇듯 과거의 선언이 나의 멱살을 끌고 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21년 블로그와 브런치에 질러놓은 글이 오늘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22년도 연말 회고 : 음악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