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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Nov 07. 2020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가벼운 읽기

책은 시대의 정신이라지만 모든 책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책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책은 즐기는 거다. (...) 그런 의미에서 몸에 좋은 음식도 필요하지만 불량식품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 글로 누구를 이길 생각도 없고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냥 나는 재미있게 쓰고 읽는 사람들은 잠시나마 즐겁길 바랄 뿐.


나는 재미도 있지만 배움도 있는 책을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도 메시지와 감동이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물론 보지만 두 시간의 재미가 끝인 영화보다는 그날밤 그리고 다음 날까지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영화가 좋다. 그런 점에서 하완 작가의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은 내 취향이 아니다. 도서관을 갔다가 신착도서에서 재미난 게 없나 훑어보다 집어와서 읽게 됐다. 프롤로그부터 아주 대놓고 '이건 가벼운 책이다' 선언을 한다. 그래서 그냥 좀 읽다 별로면 덮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글을 대충 쓰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글을 너무 재미나게 쓴다. 가벼운 글임은 분명하나 작가의 주장과 철학도 들어있다. 어딘가 홀린 듯한 기분으로 어느새 끝까지 읽어버렸다. 하완 작가의 첫 작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웨트셔츠(맨투맨)와 반바지를 매치하는 코디를 좋아하지만 스웨트셔츠를 꺼내 입을 정도의 날씨라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라 반바지를 입으면 다리가 춥다고 하소연하며 인생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다. 성적은 잘 받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은 하기 싫고, 멋있게 보이고 싶지만 꾸미는 건 귀찮고. 함께할 수 없는 욕망이 서로 부딪치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본업이 일러스트레이터인 강점을 살려 재밌는 삽화도 더했다.

열심히 살기에 지친 요즘 '내멋대로 살겠어'를 표방하는 여러 에세이 중 하나지만 재밌게 읽었고, 심지어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볼 마음까지 드는 건, "요즘의 나는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간신히 글을 짜내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짓도 오래 해먹진 못할 듯하다."고 쓰는 작가의 말이 엄살로 들리게 한다. 

시시한 것들을 그럴듯한 글감으로 둔갑시키는 작업을 하려면 아무 생각 없이 먹던 돈가스도 그냥 넘기면 안 된다. 돈가스를 마치 평양냉면 대하듯 섬세하게 맛보고, 돈가스 하나에 추억과 돈가스 하나에 사랑과 돈가스 하나에 쓸쓸함과 돈가스 하나에 팀장님과...... 그렇게 있는 거 없는 거 다 떠올리다 보면, 그러면 조금 달라 보인다. 돈가스는 이제 내가 알던 돈가스가 아니다. 칼로리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의미가 된다. (...) 아아, 에세이 이렇게 쓰는 거 맞습니까?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으로서 와닿는 내용에, 솔직함과 위트가 적절히 범벅된 글이 술술 읽힌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돈가스 좋아하세요?

탕수육과 함께 내 최애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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