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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Nov 17. 2020

파타고니아 -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 정도 돼야 세상을 바꾸는 회사지

2011년 11월 25일 블랙 프라이데이를 겨냥한 파타고니아 광고 (뉴욕타임즈)


이 광고만큼 단번에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말해주는 게 있을까. 연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연말 시즌, 자사 제품을 살 이유를 홍보하기는 커녕 사지 말라니. 함께해요 캠페인(Common Threads Initiative)은 꼭 필요할 때만 신제품을 사라며 4R을 강조한다. (파타고니아가 기업으로서 할 행동을 말하고 소비자의 행동을 촉구하는 어조에 반했다. 파타고니아 한국어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어 번역해봤다. 돈 받고 하는 번역을 그냥 해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REDUCE

WE make useful gear that lasts a long time

YOU don't buy what you don't need

파타고니아는 오래 가는 좋은 제품을 만들테니 고객은 필요하지 않은 제품은 구입하지 않는다.


REPAIR

WE help you repair your Patagonia gear

YOU pledge to fix what's broken

파타고니아가 제품의 수선을 도울테니 고객은 수선가능한 제품을 고쳐쓰기로 한다.


REUSE

WE help find a home for Patagonia gear you no longer need

YOU sell or pass it on

파타고니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제품이 갈 곳을 마련할테니 고객은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기로 한다.


RECYCLE

WE will take back your Patagonia gear that is worn out

YOU pledge to keep your stuff out of the landfill and incinerator

파타고니아가 낡은 제품을 수거할테니 고객은 제품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영문에는 "~할테니"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정확한 뉘앙스를 반영한 번역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테니 소비자도 이만큼은 약속해줘'의 캠페인인 것이다. 


REIMAGINE

TOGETHER we reimagine the world where we take only what our planet can replace

우리는 함께 지구가 다시 채울 수 있는 만큼만 소비하는 세상을 꿈꾼다.


4R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다.

로우로우의 fight waste 홍보 사진

올버즈(Allbirds)는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11월 27일부터 제품을 1달러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모두가 할인을 내세울 때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결정은 파타고니아를 연상시킨다. 인상분 1달러와 올버즈에서 지원하는 1달러를 더해 제품이 한 개 팔릴 때마다 Fridays for Future(기후변화 운동 단체)에 2달러를 기부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로우로우는 남은 원단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fight waste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환경을 위한다, 빈곤이 사라지길 바란다,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등 모든 기업이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서비스를 하든 "making the world a better place"가 사명이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놀라울 정도로 과감하고 공격적이다.

파타고니아 액티비즘 페이지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사업을 하는 이유가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이게 그냥 기업 이미지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인다. 파타고니아 제품 생산공정을 자연친화척으로 개선해왔고 노동자 인권과 공정무역을 위해 힘써왔다.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매출액의 1%를 환경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활동도 계속해왔다.


꽤나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한 기업이 시장 점유율이 높아서, 첨단기술을 독점해서, 전 세계 사용자가 수억 명이라서가 아니라 의지와 목표의식으로 이렇게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렇다고 파타고니아가 그냥 좋은 일을 하는 착한 기업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책에 언급된 경영 철학과 인사 철학은 지금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문화보다 훨씬 선구적이다. 미국 최초로 사내 어린이집을 만들고 출산 휴가를 의무화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부 테크기업에서나 가능한 유연근무를 오래 전에 보장했다. 

우리의 정책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언제나 유연한 근무를 보장하는 것이다. 서핑에 매진하는 사람은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서핑을 하러 가는 계획을 잡는 게 아니라 파도와 조수와 바람이 완벽할 때 서핑을 간다. (...) 이런 생각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이름의 근무시간 자유 선택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유연근무제도 이름부터가 멋지지 않나. Let My People Go Surfing 정책이라니.


과감해 보이는 결정도 철저한 조사와 실험으로 입증된 후에 계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파타고니아의 모든 사람에게 무모하게 위험을 무릎쓰는 '미치광이'가 되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순교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실험은 파타고니아의 디자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 부분이다.


또한 뚜렷한 핵심 고객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하고 출시한다는 명확한 타겟이 있다. 등반, 서핑, 낚시, 트레일 러닝 등 수백 명의 전문가에게 프로 구매 프로그램(Pro Purchase Program)을 제공해 전문 스포츠인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여러모로 훌륭한 경영 전략과 문화까지 갖춘 기업이다.


환경과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에 훨씬 오래 전부터 남보다 앞서 본보기를 세워준 기업 스토리는 감탄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 품질이다. 웬만하면 원서를 읽으려고 해서 오랜만에 번역서를 접했는데 번역할 때 피해야 할 것들을 모두 담아놓은 글이라 안타까웠다. 읽고 있으면 영어 문장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원문의 어순과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한국어에서는 불필요한 접속사, 복수형 등을 일일이 번역하면서 어색한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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