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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Apr 14. 2021

코로나 수도 런던

코로나를 대하는 영국인의 자세

영국은 2020년 3월 1차 전국 봉쇄령(lockdown)을 시작으로 1년 간 3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2021년 1월에는 7만 명에 육박했고 하루 사망자 수도 2천 명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인구 규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의 누적 확진자와 누적 사망자 수를 하루만에 내놓은 셈이다.  

영국은 2020년 3월부터 여러 차례 다양한 봉쇄 조치를 취했다

4개월에 달하는 3차 락다운 조치로 상황이 많이 나아져 2021년 4월 하루 확진자는 2-3천 명대, 사망자는 수십 명 정도다. 여전히 한국에 비하면 심각한 수치인데도 영국 사람들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정부에서도 실내에서만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어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식당과 술집의 실외 영업을 허용한 4월 12일,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야외 테이블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전 세계가 하나의 전염병을 동시에 겪는 전무후무한 코로나 사태는 여러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를 여실히 드러냈다. 영국과 한국의 격하게 다른 사고방식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2020년 4월 15일, 영국에서 1차 봉쇄령을 내린 지 6주 만에 백기를 들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슈퍼마켓에 들어갈 때 인원 제한으로 줄을 서서 들어가고 사무실이 폐쇄돼 집에서 일하게 됐을 뿐 그때까지 영국에서 마스크를 쓴 적이 없다. 코로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딴 세상이었다. 입국심사를 받으며 자가격리 앱을 설치하고 안내해주는 대로 전용 택시를 타고 중구 보건소에 내려 코로나 검사를 받고 바로 2주간 지낼 집으로 향했다. 자가격리 중이던 4월 말 한 때 신규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가 터졌다. 당시 기사와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 같으면 집에서 2주 동안 나오지 말라는 게 공식 지침으로 검사도 해주지 않는 영국의 하루 확진자 수(검사 기준)는 5천 명대였으니까. 


지난 1년간 두 나라 국민들은 참 다른 삶을 살았다. 객관적으로 코로나 대응을 훨씬 더 잘 한 한국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예의는 물론 법규가 됐다. 기침 하는 것도 눈치 보였고 여러 사람이 만나거나 클럽에 가는 등의 행동은 민폐이자 이기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반면 영국은 조금의 제약도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의 폭력으로 받아들였고 영국인 특유의 'Keep Calm and Carry On' 마인드로 코로나에 관계없이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 조치에 대한 보도 자료에는 '독감과 비슷한 사망률인데 왜 호들갑이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지인들과 대화해보면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에 사는 지인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회사에서 죽는다며 몸을 사렸다. 건강에 대한 염려보다 평판과 주변의 시선이 코로나 확산에 더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였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개 수준이 초기보다 훨씬 낮아졌지만 '동선이 노출되는 게 싫다'는 게 코로나에 걸리기 싫은 가장 큰 이유로 꼽는 친구도 있었다. 영국 지인들은 달랐다. 감염자 수가 워낙 많다보니 주변에 확진자들도 있었는데, 코로나에 걸린 게 조금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본인이 행동거지를 잘못한 걸로 해석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그냥 병에 걸린 것일 뿐. 일을 하지 못할 정도의 컨디션일 경우 당당하게 병가를 냈고, 주변에서는 괜찮은지 걱정의 시선을 보냈지 따가운 눈초리는 없었다.


이제 영국은 코로나 종식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판단 아래, 코로나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았다. 매년 독감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입원하고 사망하지만 일상을 멈추지 않듯, 코로나도 독감 바이러스 정도로 취급하겠다는 거다. 4월 12일 비필수 상점이 문을 열고 음식점 야외 영업을 시작했고, 5월 17일부터는 박물관 등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운영을 재개한다. 6월 21일에는 모든 방역 제한을 풀며 완전한 일상 복귀 계획을 세웠다. 


한국인으로서 코로나에 걸리는 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라는 생각은 여전하고 길거리에서 마스크 쓴 사람이 나밖에 없어도 굴하지 않고 마스크를 사수하고 있지만 영국인의 사고방식이 부러울 때도 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한국인의 정신이 자랑스럽다가도(영국도 코로나 검사와 추적을 따라하다가 포기했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태도가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런던 읍내 나들이다. 코로나 따위 개의치 않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담아 마스크 꽁꽁 싸매고 소호 거리를 휘젓고 다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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