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집밥
어느새 날씨도 따뜻해지고 해도 길어졌다. 영국은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해가 길어지는 속도가 놀랍게 빠르다. 3월 1일 일출시간은 오전 6시 45분, 일몰시간은 오후 5시 41분이었고 3월 31일 일출은 오전 6시 37분, 일몰은 오후 7시 32분(3월 28일부터 써머타임이 시작돼 기존대로라면 오전 5시 37분, 오후 6시 32분). 한 달 사이에 해가 두 시간이나 길어진 셈이다.
날이 좋아지니 공원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좋은 날이 드문 영국에선 해가 뜨면 공원 잔디밭에 해운대 해수욕장 느낌으로 사람들이 깔린다. 날씨도 좋고 온도도 20도까지 올라간 3월 30일, 기회를 놓칠세라 반차를 내고 피크닉을 갔다. 집이 아닌 곳에서 마스크를 벗고 노니 날아갈 것 같았다. 김밥 도시락을 먹고 따스한 햇살 아래 시원한 풍경을 감상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축구공을 가지고 주변에서 장난치던 10대 소년 한 무리가 물에서 죽은 물고기를 나뭇가지로 건져내더니 다시 집어넣으려고 십여 분간 소동을 벌여 소소한 엔터테인먼트도 있었다. 귀여운 녀석들.
이 김밥은 3월 20일 만든 것. 소고기김밥으로 다섯 줄, 그리운 을지로입구 먹보대장의 먹보김밥을 오마주한 계란지단 김밥이 한 줄, 진미채가 있어서 진미채 김밥이 한 줄.
그밖에 3월의 집밥 퍼레이드..
한국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3월 3일 삼겹살데이. 그 핑계로 삼겹살 구워봤다. 삼겹살이랑 먹겠다고 한인마트에서 백세주도 사왔는데 소주잔이 없어 와인잔에 마신 슬픈 이야기.
돼지고기 사서 칼로 마구 두들겨 밑간하고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 순으로 묻혀 튀긴 돈까스. 일부러 일본 마트에서 동양 양배추(양배추가 서양배추란 말인데 양배추의 동양 버전이라니.. 뭔소리고?)도 사왔다. 여기 양배추는 엄청 단단하다. 맛이 간 와인이 있어 상그리아와 어울릴 만한 멕시칸 음식 준비. 오렌지 주스를 안 넣었더니 별 맛이 안 나 화이트와인 상그리아는 그냥 디저트로 술에 절인 과일 건져 먹었다.
큰맘 먹고 치킨 튀겼다. 이 날 주방은 전쟁터가 됐지만 후라이드와 양념 모두 맛있게 먹었고 양념치킨 남은 건 치밥용으로 냉동실 행. 집 앞 이탈리아 식료품점에서 고르곤졸라 라비올리와 단호박 라비올리를 사와서 알프레도 소스를 만들어 먹었다. 먹을 땐 맛있게 먹었는데 알프레도 소스에 들어간 버터와 파마산 치즈의 여파로 다음 날까지 식욕이 없는 부작용을 겪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선 손질도 해봤다. 고등어 알도 처음 먹어봄.
코로나 락다운 속 런던에서 3월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