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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Sep 18. 2020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

암과 싸우고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세상에 나타난 허지웅을 방송에서 봤을 때 기뻤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거나 기다렸던 사람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한 후 생각과 가치관이 크게 바꼈다고 말했고 무엇보다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말에 놀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였을까. 


『살고 싶다는 농담』은 허지웅이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허지웅 특유의 어투가 담긴 투박한 듯 섬세한 문체로 본인이 겪은 고통을 덤덤하게 풀어낸다.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삼키고 뱉고 싸고 자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먹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정확히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배변할 수 없다는 걸 한 시간 만에 깨달았다. 그날 처음 울었다.


끔찍한 고통이 이어지던 투병생활 중 죽음을 결심하고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모두 털어넣고 "천장이 내려앉고 바닥에 뒹굴었다"는 무서운 밤을 보낸 후 허지웅은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동이 트자마자 나는 병원에 갔다. (...)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평소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더 열심히 먹었다.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 내가 그날 밤에 겪은 일 때문이 아니다.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허지웅은 불행과 고통을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감내하라는 말에 가까운 그의 메시지는 헛된 희망이나 기대를 주는 대신 "네가 힘든 거 알고 있다. 너를 응원한다"고 말한다. 책 전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공감했던 부분을 소개한다. 


젊은 날의 나는 대개 불행했고, 앞으로도 불행을 떨쳐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잠식되고 싶지도 않았다. 행복한 사람은 거만했고, 거만해서 재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골몰했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불행에 시달린 이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피해의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피해의식이 만든 괴물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이해받을 수 있다고, 아니 이해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행했으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사연이 나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는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큰 오만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자기만의 행복과 자기만의 고통을 겪고 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했을 때 최악의 반응은 "그래도 네가 낫지. 나는 말야.."다. 행복과 불행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각자가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쓴 글이라고 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버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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