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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Sep 10. 2021

The Anthropocene Reviewed

인간 중심의 세상에 대한 에세이

소설 『The Fault in our Stars로 잘 알려진 John Green의 첫 에세이집이다.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확연하게 인지하게 된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지만 모든 글에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느슨한 연결고리다. 오히려 더 두드러지는 건 매개로 삼는 각 소재에 매기는 평점이다. 배달음식에서 숙소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젠 당연시되는 평점 시스템을 흉내내 개인적인 평점을 매기는데 이런 컨셉으로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루는 소재는 헬리 혜성과 같은 천체에서부터 긁으면 냄새 나는 스티커 같은 소소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위 같은 생명체에서부터 "구글에서 모르는 사람 검색하기" 같은 행동,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노래, CNN 채널, Monopoly 보드게임 등 장르를 망라한다. 총 44개 꼭지로 이루어진 소재 중 좋았던 글 몇 개를 소개한다. (아직 한국어판이 출간되지 않아 번역은 내맘대로.)



Whispering(속삭임)

불안장애와 강박장애를 가진 저자는 일상이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딸 앨리스에게 아침을 먹이고 있는데 역시나 늦을까봐 불안하다.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까지 23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이는 그림책을 보며 토스트를 천천히 음미한다. "8분 남았어!" 아이를 재촉하며 최대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신발, 코트, 가방을 현관 앞에 줄지어 놓는다. 차 키 챙겼나? 지갑은? 핸드폰은? 6분이 남은 상황에서 초조함이 몰려오는데 아이는 토스트를 아주 조금씩 떼어먹는다. 어떻게 하면 토스트를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었을까 고민한다. 가장자리를 떼어내고 버터를 바르고 시나몬 슈가까지 뿌려줬는데. "이제 늦었어 신발 신어야해" 라고 하는데 아이가 말한다. "아빠, 비밀 알려줄까?"


아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아이는 (집에 아무도 없었지만) 입 주위에 손을 모으고 속삭인다. 저자는 아이의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며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별 얘기는 아니었다고 적는다. 하지만 아이가 속삭일 줄 안다는 것과 비밀이 뭔지 아는 것에 놀랐다고. 시간에 쫓겨 서두르는 부산함 대신 아이에게 필요한 건 작은 목소리까지 들릴 수 있는 차분함이었다. 


I miss the whisper. I was a germophobe long before the pandemic, and I know that another person's breath against my skin is a surefire sign of respiratory droplet transferal. But still, I miss it.
속삭임이 그립다. 코로나 이전에도 결벽증이 있었고 누군가 나에게 속삭인다는 건 침방울이 닿는다는 의미지만, 그래도 그립다. 

These days, when my kids whisper to me, it is usually to share a worry they find embarrassing or frightening. It takes courage even to whisper those fears, and I am so grateful when they trust me with them, even if I don't know quite how to answer. (...) When I was a kid, I thought being a parent meant knowing what to say and how to say it. But I have no idea what to say or how to say it. All I can do is shut up and listen. Otherwise, you miss all the good stuff. I give whispering four stars.
아이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일 땐 대개 부끄럽거나 무서운 고민을 털어놓을 때다. 그런 얘기를 속삭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얘기를 해줄 때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도. (...) 어렸을 땐 부모가 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줄 알았다. 하지만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다물고 그저 조용히 귀기울이는 것뿐. 아니면 그 소중한 말들을 놓친다. 속삭임은 별점 4개다.  



The World's Largest Ball of Paint(세계 최대의 페인트 볼)

미국 인디애나주 알렉산드리아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페인트 볼이 있다. 1977년 마이크 카마이클(Mike Carmichael)은 당시 3살이었던 아들과 야구공에 페인트칠을 한 후 계속해서 페인트를 덧입힌다. 40년이 지난 지금 26,000번 이상 덧칠되었다고 한다. 무게 2.5톤이 넘는 이 공은 별도의 집에 설치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페인트칠을 한다. 


Maybe in the end art and life are more like the world's largest ball of paint. You carefully choose your colors, and then you add your layer as best you can. In time, it gets painted over. The ball gets painted again and again until there is no visible remnant of your paint. And eventually, maybe nobody knows about it except for you.
결국 예술과 인생은 세계 최대의 페인트 볼과 비슷한지 모른다. 고심해서 색상을 골라 정성스럽게 페인트칠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그 위에 덧칠을 하고 또 해서 내가 칠한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게 될 거다. 나만 기억할 뿐.

But that doesn't mean your layer of paint is irrelvant or a failure. You have permanently, if slightly, changed the larger sphere. You've made it more beautiful, and more interesting. The world's largest ball of paint looks nothing like the baseball it used to be, and you're part of the reason. (...) I give the world's largest ball of paint four stars.
그렇다고 내가 칠한 페인트가 아무 의미가 없거나 실패작은 아니다. 아주 조금은 공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니까. 더 아름답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들었으니까. 세계 최대의 페인트 볼이처음의 야구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일조한 셈이다. (...) 세계 최대의 페인트 볼에 별점 4점을 매긴다. 



Googling Strangers(모르는 사람 구글에 검색하기)

모두가 타고난 재능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자신의 재능은 모르는 사람을 구글에서 검색하는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파티에 초대받으면 참석자들을 미리 검색해 보는데 얼마나 세세하게 사생활을 알 수 있는지 소름끼칠 정도라고. 개인정보가 너무나 쉽게 기업의 손에 넘어가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을 구글에서 검색하는 걸 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저자가 20대 초반 병원 목회자(원목)로 일할 때 3살 아이가 전신 화상을 입고 실려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응급병동에서 일한 지 수 개월이 됐지만 이렇게 끔찍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탄내가 진동했고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부모 역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의료진이 처치를 할 수 있도록 부모를 막아서야 했다. 그날 밤 창문이 없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부모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아이를 잃는 부부의 절반이 2년 내에 갈라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기도하겠냐고 물었을 때 아이의 엄마는 고개를 저었고 담당의사는 "최선을 다했지만 생명이 위독하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난 후 저 아이는 살기 힘들 거라고 담당의사가 저자에게 말한다. 


일주일 후 원목 기간을 마친 저자는 신학교 진학을 포기했고 그 아이가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그후로 매일 밤 그 아이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했다. 구글에 검색을 해볼 수 있었지만 두려웠다고.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얼마 전 구글에서 아이의 이름을 검색했다. 흔한 이름이 아니었고 최상위 결과로 뜬 건 페이스북 페이지였다. 링크를 클릭하자 아이의 사진이 떴다. 18살. 살아있었고 잘 자라주었다. 존 디어 트랙터를 좋아하고 청년농부를 꿈꾸고 있었다. 친구 목록에서 부모의 프로필을 발견해 들어가보니 여전히 부부로 함께였다. 아이는 살아있었고 컨트리 음악을 좋아했다. 여자친구를 "애기"라고 부르면서. 살아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구글에 검색하는 행위에 별점 4개를 주는 수밖에.



소개한 글들이 마침 모두 별점 4개를 받은 소재들인데 별점 1점에서 5점까지 다양한 소재가 나온다. Booklist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수백 권의 책을 읽은 저자는 폭넓은 지식과 글빨로 중구난방일 수 있는 소재들을 재미나게 엮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인류가 세상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우리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하면서도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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