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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Mar 30. 2022

코로나 일기

런던에서 지금까지 안 걸린 게 용하다

3월 16일 수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감기에 걸린 듯 인후통 느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줄이 회의가 이어진 전날의 여파인지 몸살 기운도 있었다. 혹시 몰라 자가진단 키트를 꺼내 코로나 검사를 했다. 음성이었다. 감기여도 옮기면 안 되니까 사무실 출근하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후 들어 목 통증이 심해져 오후 병가를 내고 회의를 취소했다. 저녁에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해봤지만 여전히 음성이었다.


3월 17일 목요일 

우중충한 런던의 겨울이 끝나가며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가 예보되어 있던 터라 진작 휴가를 낸 날이다. 여전히 인후통에 살짝 두통도 있는 것 같아 일어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했다. 역시 음성. 광합성을 하면 좀 나으려나 싶어 책을 챙겨 리젠트 파크를 향했다. 물에 비타민 발포제를 타서 물병에 담아 들고. 


1. 햇살 좋은 날에는 무조건 공원(리젠트 파크)  2. 햇살 아래 앉아 책 읽는 행복(파친코 진짜 재밌다!)


3월 18일 금요일 

여전히 증세가 비슷해 또 검사를 했다. 계속 양쪽 콧구멍에 면봉을 집어넣어 검사를 했는데 용기를 내서 목구멍을 쑤셨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서 '아' 해보라며 의사 선생님이 설압자(혀 누르는 막대기)를 집어넣기만 해도 헛구역질을 했던 터라 자신이 없었다. 겨우 쓱 면봉으로 훔치고 검사를 해보니 어제와는 달리 희미하게 T자에 줄이 생겼다. 어라?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새 검사 키트를 꺼내 이번엔 제대로 목구멍을 쑤셨다. 웩웩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확실한 두 줄이 나왔다.

 

3. (왼쪽부터) 양쪽 콧구멍 했을 때, 목구멍 살짝 훔쳤을 때, 목구멍 제대로 쑤셨을 때

    

드디어...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증상이 있었던 건 수요일부터니까 사실상 이미 3일차라고 봐야겠지? 감기라고 생각했을 때도 옮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무도 안 만나고 회사도 나가지 않아 다행... 영국은 모든 방역 조치를 해제해 확진자도 법적으로 격리 의무가 없다. 다시 음성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겠지만 최소한 장보러 갈 수는 있으니 혼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리하다. 


우선 매니저에게 코로나 양성 사실을 알리고 코로나에 걸리면 쓸 수 있는 휴가를 하루 냈다. 의심이 가는 날은 아무래도 3월 13일 일요일,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공연이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기침을 하던 게 생각났다. 함께 공연을 본 지인에게 연락해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렸는데 다행히 친구는 음성이다. 너무나 훌륭한 공연이었는데 감동과 함께 바이러스까지 덤으로 선사했네.


3월 19일 토요일

올해 들어 런던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창한 주말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코로나 때문에 날린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증상은 심하지 않았다. 6시간마다 꼬박꼬박 챙겨먹는 타이레놀 덕분이겠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는 새벽에 확실히 목 통증이 심하다. 인후통이 가장 심하고, 미열, 기침 정도? 이제 콧물도 나기 시작했다. 작년 말 팀원들이 줄줄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다들 병가를 쓰지 않고 줌 회의에 참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대로 증상이 심해지지 않고 회복되길...


3월 22일 화요일

증상이 처음 나타난 날부터 치면 7일차가 되었는데 아직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코막힘이 심해져 머리가 띵하고 입맛도 없고 무기력하다. 잠이 쏟아지는데 막상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오진 않는 피로감. 일주일이면 나을 줄 알았는데 마음만 앞섰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데?


4. 드디어 음성! 확실하게 하기 위해 목구멍으로 한 번, 콧구멍으로 한 번, 두 번 따로 검사를 했다


3월 25일 금요일

드디어 음성 결과가 나왔다. 양성 결과가 나온지 정확히 7일 만에, 증상이 시작된 날부터는 10일 만에. 일부러 목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따로 두 번 테스트 했는데 두 번 다 한 줄만 나왔다. 음성 결과 기념 최애 카페 Kaffeine에서 오랜만에 플랫화이트를 마셨다. 여전히 코가 막혀 숨쉬기 힘들고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일단 바이러스는 사라졌다! 


5. 날씨 좋다고 김밥 사서 공원에 가서 기분도 내고 한참을 걷다 들어왔다  6. 몇 년만에 보는 친구라 반가웠으나 몸은 가장 아팠던 날


3월 27일 일요일

전날 날씨가 좋아서 오랜만에 바깥 바람 쐰다고 2시간 넘게 걷다 왔더니 몸살이 났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무리한 듯. 코로나 양성일 때보다 이 날 가장 아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 여전히 코로 숨쉬기 힘들고 입맛도 없다. 싱가포르에서 친구가 출장을 와서 이 날 아니면 볼 수 없어 억지로 점심 약속을 나갔다 왔을 뿐, 하루종일 침대에서 끙끙 앓을 정도로 아팠다. 바이러스가 사라져도 끝난 게 아니구나. 


3월 30일 수요일

어제 저녁 처음으로 약을 안 먹고 잤다. 2주간 하루 서너번 꼬박꼬박 타이레놀 콜드와 Day & Night Nurse(종합감기약)를 먹었더니 아주 지긋지긋하다. 코막힘 증상은 여전하고 조금만 일해도 피곤해 수시로 침대에 드러눕지만 이제 약 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 코로나 일기는 여기까지. 오랜만에 사무실에 나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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