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사귄 남자

by 적자생존


1. 위안



북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어떤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을 지켜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글을 쓰는 행위를 '훔쳐'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시간을 보니 20분은 훌쩍 넘었다.



한 문장을 써 내려갈 때마다 스스로의 검열에 막히는 듯했고,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나만 글 쓰는 게 힘든 건 아니었어.


스크롤을 내리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에 위안을 얻었다.



2. 책과 사람



내가 좋아하는 박준 시인을 좋아했던,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박지선'씨 인터뷰가 생각났다.



본인은 사람을 되게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책을 좋아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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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왜 쉬질 못하냐'는 소영이의 물음에 '내면의 어머니가 나를 늘 채찍질하신다'라고 대답해 버렸다.



이게 그냥 나의 모습이니 받아들이라는 명언이 슬프면서 끄덕여졌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다. 무엇에 빠져있고, 뭔가에 열광하는 삶을 호들갑스럽게 살아낼 때 생동감이 넘친다.



언제는 글쓰기였고, 언제는 부동산이었고, 지금은 무얼까.



4. 10년 동안 사귄 남자



내가 아는 남자인데


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분명히 모자 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름철 반바지는 노 땡큐라고 말했는데



기어이 학부모가 다 모인 자리에 모자와 반바지를 입고 나타난 아는 남자



비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발렌시아가 모자를 쓰고 한껏 꾸민 듯 안 꾸민 이현이 아빠랑 비교된다.



사랑은 거룩하게 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이별하고 싶은 마음은 결혼 10년 차가 넘어서 그런가.



둘이 사는 내내 굳건한 의리로 사랑이 변해서 그런가



5. 자식



아마도 짝사랑을 했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늘 생각한다.



어떻게든 한 번 더 나를 보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주 조금 잘했을 뿐인데 이만큼 멋지다고 치켜세운다.



에르노의 '집착'에서 질투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자식에게 집착이라니 약간 올가미 생각나는데, 그건 집착은 아닐 것이라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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