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니 Sep 12. 2022

도둑같이 찾아오는 이별의 과정을 그린 영화

20대 초, 중반을 지나, 후반, 세 번째 감상에서야 비로소 느껴진 것

영화 HER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찾아보게 된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을 땐 OST를 재생한다. 다만 귓가에 플레이될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과 아름답지만 아픈 과거의 기억 속에 빠질 수 있음에 주의하자. 특히 Loneliness#3, #4 이 두 곡은 위험하다.

마치 무수한 별이 빛나는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은빛 사막에 홀로 있는 기분,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허허벌판을 헤매다 끝내 모든 힘을 잃고 오른쪽 뺨을 바닥에 뭉개어 엎드려 쓰러져 있지만 아무도 날 구하러 와줄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슬픔.



나는 사진작품을 볼 때 깊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보다는 텍스쳐, 색감, 리듬감, 구조 등 보이는 것으로부터 재밌는 요소를 찾아낼 때 즐거움을 느끼는데,

영화 HER이 처음 막 상영했을 20대 초반 때도 그저 공간 연출, 색감, BGM, 이런 표면적인 것이 좋았다. 또 영국 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와 같이 미래를 배경으로 했으나 요란하지 않게, 멀고도 가까워 보이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부분도 부합했기에 한번 더 챙겨보고 싶었다.


2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찾아보게 된 영화 HER, 마침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곳을 깜짝 마주치게 될 때 재미있더라. 남자 주인공이 새로운 여자와 데이트하던 모던한 지하동굴 느낌의 식당은 없어져서 가보지는 못했다. 이때도 단순히 AI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라고 생각됐다. 가슴과 뇌 속 깊숙이 쿡 하고 찌르르 파르르 아려오는 이별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별 중인 테오도르를 가볍게 넘겼다.

출처 - 구글 이미지


20대 후반, 사실상 한국 나이로는 서른이 되어 문뜩 HER의 OST를 찾아들었다. 사실은 상하이가 그리워서 찾아들었다. 성인이 되고 타지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홀로 독립하여 감정적, 상황적 온갖 풍파를 직면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찾아본 HER은 지독하게 외로운 한 인간의 모습, 이별의 아픔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로 자리 잡았다. 마침내, 그제야 이런 것들이 보이더라.

출처 - 구글 이미지



메마른 채 무기력해 보이는 주인공 테오도르,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끝내 갈림길에 선 전 연인과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제어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테오도르, 이별의 아픔은 그렇게 도둑같이 찾아온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연관 추천 곡]

電台情歌(Radio Love Song) by 莫文蔚(Karen Mok)

   - 곡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가사 :

       我们一直忘了要搭一座挢  到对方的心底瞧一瞧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속 깊숙이 들여다볼 다리를 짓는 일을 줄곧 잊고 있었어

       体会彼此什么才最需要  别再寂寞的拥抱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해, 더 이상의 쓸쓸한 포옹은 그만해야 해

작가의 이전글 2201_삼십이립(三十而立) 퇴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