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 중반을 지나, 후반, 세 번째 감상에서야 비로소 느껴진 것
영화 HER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찾아보게 된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을 땐 OST를 재생한다. 다만 귓가에 플레이될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과 아름답지만 아픈 과거의 기억 속에 빠질 수 있음에 주의하자. 특히 Loneliness#3, #4 이 두 곡은 위험하다.
마치 무수한 별이 빛나는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은빛 사막에 홀로 있는 기분,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허허벌판을 헤매다 끝내 모든 힘을 잃고 오른쪽 뺨을 바닥에 뭉개어 엎드려 쓰러져 있지만 아무도 날 구하러 와줄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슬픔.
나는 사진작품을 볼 때 깊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보다는 텍스쳐, 색감, 리듬감, 구조 등 보이는 것으로부터 재밌는 요소를 찾아낼 때 즐거움을 느끼는데,
영화 HER이 처음 막 상영했을 20대 초반 때도 그저 공간 연출, 색감, BGM, 이런 표면적인 것이 좋았다. 또 영국 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와 같이 미래를 배경으로 했으나 요란하지 않게, 멀고도 가까워 보이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부분도 부합했기에 한번 더 챙겨보고 싶었다.
2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찾아보게 된 영화 HER, 마침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곳을 깜짝 마주치게 될 때 재미있더라. 남자 주인공이 새로운 여자와 데이트하던 모던한 지하동굴 느낌의 식당은 없어져서 가보지는 못했다. 이때도 단순히 AI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라고 생각됐다. 가슴과 뇌 속 깊숙이 쿡 하고 찌르르 파르르 아려오는 이별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별 중인 테오도르를 가볍게 넘겼다.
20대 후반, 사실상 한국 나이로는 서른이 되어 문뜩 HER의 OST를 찾아들었다. 사실은 상하이가 그리워서 찾아들었다. 성인이 되고 타지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홀로 독립하여 감정적, 상황적 온갖 풍파를 직면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찾아본 HER은 지독하게 외로운 한 인간의 모습, 이별의 아픔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로 자리 잡았다. 마침내, 그제야 이런 것들이 보이더라.
메마른 채 무기력해 보이는 주인공 테오도르,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끝내 갈림길에 선 전 연인과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제어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테오도르, 이별의 아픔은 그렇게 도둑같이 찾아온다.
[연관 추천 곡]
電台情歌(Radio Love Song) by 莫文蔚(Karen Mok)
- 곡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가사 :
我们一直忘了要搭一座挢 到对方的心底瞧一瞧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속 깊숙이 들여다볼 다리를 짓는 일을 줄곧 잊고 있었어
体会彼此什么才最需要 别再寂寞的拥抱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해, 더 이상의 쓸쓸한 포옹은 그만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