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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니 Sep 17. 2022

2201 낯선 섬 하이난에서 생긴 일

중국의 발리, 중국의 최남단, 4계절 내내 여름을 띄는 섬, 하이난

퇴사를 하고 바로 다음날 찾은 곳은 중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 하이난이다. 22년 1월에 난 하이난을 두 번 찾았다.

한 번에 오래 있고 싶었지만 퇴사 후 비자를 워킹비자에서 인도주의 비자로 교체해야 하는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이난에는 대표적으로 2개의 서핑촌이 있다.

1. 호우하이춘 (后海村, 이하 '호우하이')

2. 완닝르웨완 (万宁日月湾, 이하 '완닝')

이 두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인상깊은 추억을 만들었다



호우하이는 힙하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답답한 도시 삶을 등지고 내려와 눌러앉아있다. 호우하이와 완닝은 마치 "도화원기"에 나오는 도화원 같다. 도심을 떠나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자본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한 채 평화롭게 사는 곳. 하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상업화 현상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주로 서구화된 패션을 입고 있다. 레게 헤어, 장발의 구릿빛 피부, 비키니에 스커트 치마... 제각기 서핑 샵, 호텔 등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접 음식점이나 카페를 차려 생활한다.


본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아침식사 전용 노점이 있는데, 시푸드 누들 맛이 최고다. 톡 쏘고 매콤한 하이난 특산 노란 고추소스를 한 스푼 넣어 먹으면 칼칼하고 맛이 좋다. 본토인들이 차린 점포를 제외한 젊은 점포들의 교체는 비교적 빠르게 일어난다.



내가 가는 서핑 샵은 샤카서프 호우하이점, 점주가 겨우 25살이다. 어린 나이 때부터 이런저런 비즈니스 경험이 많아 모험심이 강하고 세상 물정에 밝다. 본래 라트비아에서 온 금발의 섹시한 미녀와 거의 결혼까지 생각했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이런저런 일로 고향으로 돌아가느라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21년 9월에도 호우하이를 방문했으나, 단 5개월 만에 찾은 호우하이의 모습은 익숙하고도 새로웠다.


호텔 앞에 장발의 젊은 남자애가 푸드트럭을 개조해 카페를 차리고, 그 주변으로 빈백과 소파를 잔뜩 설치해뒀다. 온 동네 젊은이들이 그곳에 눌러앉아 누워있기도 하고 줄담배를 피기도 했으며 기타 치고 노래도 불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내더라. 사장과 SNS 친구라 연락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왔으며 아직도 그러고 지낸다고 한다.

밥사발 아메리카노

언제는 나도 그 카페의 명물 '밥사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한 남자애가 말을 걸더라, 알고 보니 그 친구 서울에서 유학 경험이 있다더라. 고향은 북경인데 총칭에서 일하다가 현재 호우하이가 너무 좋아서 기한없이 눌러앉아있다고 한다. 갑자기 옆에 역시나 장발의 모험가같이 생긴 아저씨한테 수공예 팔찌를 하나 주문한다. 자기는 그 팔지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계혈등(鸡血藤)"으로 만든 팔찌인데, 중국의 티베트 고원에서 자라는 나무줄기로 만든 것이다. 중의에선 약재로써 유명하고, 마치 게르마늄 팔찌처럼 몸에 지니고 있으면 혈액순환과 관절에 좋다더라. 가짜도 많다고 하고 퀄리티에 따라 그 값도 천차 만별이라고 한다. 단순히 지니고 있는것 만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자는 계혈등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단다. 몸통만한 배낭가방을 들고 오더니 일자로 쭉쭉 뻗은 한 뼘 정도 길이의 계혈등 속에서 내 팔목에 어울릴만한 굵기의 가지를 고른다.

길게 뻗은 줄기를 불로 데운 뒤 손목에 맞게 굴곡을 만들어 준다


그 공예가가 하는 말이 티베트에서는 사내아이가 해발 4천 미터도 더 되는 높은 산에 올라가 직접 계혈등을 캐고, 불을 지저 팔찌를 만든 다음 좋아하는 여자한테 청혼할 때 그것을 준다고 한다. 계혈등은 워낙에 구하기가 험난하여, 그것만으로 용맹함을 증명할 수 있다더라. 그 말을 듣고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애는 당황해하더니 자기는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고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이니 기념으로다가 그 팔찌를 준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홀로 완닝으로 가는 차를 불렀다.

호이하이촌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많아 차가 막혀 길가에서 20분 정도를 서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너 혹시 어디로 가는지 물어도 될까?"


나는 낯선 이의 이 물음에 약간의 경계를 하며 손으로 대충 위쪽을 가리키며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 여자애가 자기가 지금 완닝에 가는 차를 불렀는데 길이 멀어서 그런지 기사님들이 자꾸 취소를 한다고 혹시 방향이 같으면 차비는 자기가 낼 테니 같이 갈 수 있냐고 묻길래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며 목적지가 같으니 반반 내자고 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상하이 출신이고 현재도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일하는 곳이 우리 집 옆동네였다. 신기한 인연을 그렇게 맺고 둘 다 안전히 완닝에 도착해서 헤어졌다.



뒤뜰은 산, 앞뜰은 바다, 바다 쪽은 비교적 상업화되어 길도 넓고 세련된 바, 카페, 서핑 샵이 많고, 스쿠터를 타고 뒤뜰로 5분을 들어가면 닭들이 뛰노는 시골마을이 나온다. 샤카서프 완닝점에서 사귄 친구들을 통해 시골촌에 저렴하고 쾌적한 숙소에 자리를 잡고 할 일이 없어 서핑 샵에서 죽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서른이 넘은 한 언니는 상하이 출신에 유치원 교사인데 결혼 결혼 외치는 어른들 성아에 못 이겨 잠시 내려와 있다고 했다.


한 친구는 18살,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서핑 국가대표로 키우려고 그 동네에 보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생, 청두 출신이나 신장에서 대학을 나오고 하이난으로 내려와 아르바이트 중, 또 다른 친구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중국 대기업 화웨이에 취직했고 입사 전 시간 보내려고 내려와 있는 중, 누구는 나와 동갑이고 PT선생, 바다가 좋아서 내려와서 서핑 강사로 있고, 누구는 하이난 본토박이....


많은 이들이 무료로 서핑샵에서 봉사하고, 서핑샵은 그들에게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한다. 물론 제대로 월급 받고 일하는 정직원들도 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건 참으로, 정말로 재미있다.



그곳은 새벽 2시부터 닭이 울어대서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귀마개가 불편한 탓에 잠을 잘 못 자고 샤카서프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매일 아침 일출을 보러 바다에 나갔다.


현지식 아침식사를 매우 저렴한 값에 맛있게 먹고,

오전에는 서핑을 하고, 오후에는 쉬다가 스쿠터를 타고 산에 올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밤에는 시골촌의 한 식당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술과 야식을 먹었다.


완닝을 떠나 외노자 살이를 하던 상하이로 돌아갔다가 현재는 귀국하여 서울.


완닝에서 사귄 친구가 그곳 바다 조개로 만든 목걸이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하이난의 “자연 뽕”에 심취해 있었다. 맛집 탐방, 좋은 옷과 가방을 사는 것이 다 부질없어 보이더라.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최대한 물질보다는 경험에 소비를 집중하고자 하는 편이다.


여행이 삶과 가치관을 바꿔봤자 얼마나 바꾸겠냐 싶었지만, 실로 효력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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