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험 전 날에 더 신나게 노는 거니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 전략

by 히예

학생 A는 시험을 하루 앞두고 유튜브 알고리즘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밤을 꼴딱 새운다. 그렇게 시험 준비와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낸 다음 시험 당일, 친구에게는 여유를 부리며 농담을 하듯 말한다.

"아, 어제 나 또 유튜브 보느라 밤샜잖아, 오늘 시험 망함ㅋㅋ"


회사원 B는 업무상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과음을 한다. 그리고 발표를 앞두고 동료들에게 말한다.

"어제 가볍게 한두 잔 한다는 게 많이 마셨더니 오늘 정신이 없네요"


A와 B는 왜 이러는 걸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어쩐지 그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골라서 하는 것 같은 상황.


A와 B는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자기 구실 만들기'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개인이 실패를 경험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두려워 성공적인 수행에 방해가 되는 상황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조성하는 심리적 기제를 지칭한다(Johns & Berglas, 1978).


자기 불구화 전략.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전략이다. 자기를 불구로 만들어서까지 얻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잠깐이긴 하지만 실패했을 때 자존감이 다치는 것을 보호할 수 있다.


이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일을 미룬다거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행동을 한다. 그리고는 실패의 원인은 자신의 무능력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피력하는 것이다. 실은 실패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미리 실패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들어두고는 자존감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도망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험을 못 본 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고, 어제 유튜브를 밤새 보는 바람에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발표를 망친건 내 무능력 탓이 아니라, 어제 과음을 좀 하는 바람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야'


즉, 자기 불구화 전략은 실패가 너무 두려운 사람의 방어기제이자 스스로를 별로인 인간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 심리적 작용이다.


이 전략을 사용하면 수행에 실패하더라도 핑계를 댈 수 있고, 성공하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이러나저러나 '괜찮은 나'의 모습을 지킬 수 있는 괜찮은 방법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뿐, 장기적으로 이 전략이 습관처럼 굳어진다면 수행의 질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자기를 불구로 만들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괜찮은 나' 지키기'도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자기 불구화 전략이 우울, 불안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기 불구화 전략은 부작용이 더 큰 방법이기 때문에 서둘러 떨쳐버리는 것이 좋다. 만약 습관적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늦잠을 자고, 놀고, 미루는 자기 행동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은 내가 최선을 다 했는데도 실패하면 스스로 너무 초라해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던 거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자기 불구화를 멈추는 첫걸음이다.


만약 자녀가 습관적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는 것 같다면 이 때는 부모가 먼저 알아차리고 자녀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 무의식적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는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자기 불구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기에 너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큰 것 같은데, 만약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하면 너 스스로 너무 못나 보일까 봐 그게 두려워서 괜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대충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넌 어떤 거 같아?'라고 천천히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할 일을 미루는 모든 아이를 자기 불구화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게임이나 핸드폰에 더 몰두하거나, 공부를 계속 미루거나, "대충 하면 되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것은 자기 불구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


[참고문헌]

* Jones, E. E., & Berglas, S. (1978). Control of attributions about the self through self handicapping strategies: The appeal of alcohol and the role of underachievemen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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