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일종의 해부학
필라테스 한 주 수업 예약링크가 열린다는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어플을 켜보니 매 타임 남아있는 자리는 한두 자리뿐이었어요. 예상외로 빡빡해 보이는 예약에 조금 놀랐지만 무사히 월요일, 수요일의 예약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등록한 필라테스 센터가 동네에서 꽤나 자리를 잡은 모양이에요. 필라테스 센터가 갑자기 망해서 장기간 끊어놓은 수업권을 통으로 날리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조금 낮아졌으니 한 편으로 좋네요.
제가 정한 운동시간은 저녁 6시. 퇴근 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퇴근 후 잠시 여유를 찾겠다고 집에 들렀다가는 여간해서는 다시 나오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에요. 돈을 낸 수업이니 좀 다르려나 싶지만 동선의 효율은 중요하니까요?!
단골손님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저처럼 신입회원을 위한 친절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몇 년 전 한 달짜리 수업이 아니었다면 호흡법이나 척추를 분절하는 움직임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수업을 들을 뻔했어요. 몇 년 전에 물리치료사 강사님을 찾아간 스스로를 칭찬해 봅니다. 그때도 그룹 수업을 등록했는데 안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2:1 아니면 1:1로 자세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거든요. 역시 뭐든 해보는 것은 언젠가 이렇게 쓸모가 생기나 봅니다.
첫 수업은 바렐이라는 기구를 이용했습니다. 어플 상으로는 6명 예약이 꽉 차있었는데 수업은 4명만 참여했고요. 오랜만에 보는 기구였어요. 바렐을 볼 때마다 곡선 때문인지 우아하게 생겼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요. 그 위에 몸을 기울이며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흡사 발레리나를 떠올리게 하거든요.
그날은 주로 바렐 위에 무릎을 구부려 네발기기 자세를 기본으로 하는 변형 동작들을 했어요. 처음엔 기본자세에서 호흡만, 그러다가 한 손씩 번갈아 뻗어내고, 다리도 한쪽씩 번갈아 뻗어내고요. 등도 굽혔다 폈다 했지요. 아주 오랜만에 갈비뼈를 오므려가며 호흡을 했더니 호흡만으로도 운동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배에 힘도 딱 주고 온몸을 오랜만에 움직여봤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갈비뼈가 아프더라고요? 정확히는 갈비뼈에 붙은 근육들이려나요. 거기에다가 양쪽팔과 엉덩이까지. 평소에는 주인을 잘못 만나 태만하던 온몸의 근육들이 오랜만에 자극을 받았더니 '나 여기 있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어요. 갈비뼈에도, 양쪽 팔과 다리, 엉덩이에도 제가 모른 척하며 살던 근육들이 있었던 거죠.
첫 수업 이후 네 번을 더 갔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곳에 자극을 받고 있어요. 이를테면 날개뼈 같은 부위. 가슴을 쭉 펴고 견갑골을 내리는 운동을 하고 난 다음 날 날개뼈 쪽이 욱신거려서 날개 돋아나는 줄...(?) 그런 경험을 하고나니 필라테스를 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해부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몸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내 몸의 근육이 어디 어디 있는지 알게 되니까요. 다음 번 수업에는 내 몸 어느 부위가 자기 소개를 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