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어머니의 날에.
일요일 하루 중 반은 배탈로 화장실에서 반은 침대에서 보낸 날.
날은 궂고 흐렸던 스페인 어머니의 날(스페인 어머니의 날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우리 가족은 별다른 세리머니 없이 조용했고, 다만 나는 한글학교 수업에서 진행했던 "엄마에게 편지 쓰기" 수업에서 꾹꾹 눌러쓴 딸의 카드 하나를 받았다. (그렇다. 역시 딸이로구나. 아들도 둘이나 있건만)
바깥 나라에서 사니, 어느 나라의 명절을 쇠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는데,
오늘같이 어머니의 날이라든가, 3월 중에 있는 아버지의 날(스페인 산 호세의 날) 같은, 큰 명절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애써서 기념하고 넘어가는 날들에 "생각이 잠깐 멈춤"이 되곤 한다.
지척에 가족이 살면, 그 핑계로 어른을 모시고 식당을 간다든가, 작은 선물을 챙긴다든가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기념하지 않고 5월 8일 하루에 한꺼번에 기념한다. 전통의 카네이션이라든가, 선물, 식사 이런 일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기나긴 유예의 기간을 살아왔다. 부모님 지근거리에 사는 형제들에게 효도 "아웃소싱'을 맡기고 살아온 나는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부탁'을 하지 않고, 이것저것 사서 소포를 꾸려 부치긴 했다. 5월 8일 전까지 도착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당일이 되면 잔망스러운 이모티콘과 함께 덜 잔망스러운 글을 덧붙여서 양가의 부모님께 '카톡'을 보낼 예정이다. 늘 그랬듯이.
요양원에 계신 엄마는 오늘 아침 화상통신으로 얼굴을 뵈었다. 때마다 들이가 좀 있긴 한데, 오늘은 상태가 좋으신 편이었다. 엄마와 더 이상 "어른의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그래도 일상의 대화 "식사는? 아픈 곳은? 잠은 잘 주무시고?" 이런 몇 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슬픔이 길어지면 그것도 일상이 되어버리지만, "이만하면 만족해요"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나를 속이는 것 같다. 사실 전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나의 감정은 "하는 수 없지. 받아들일 수밖에"에 가까울 것이다.
예전에 어느 어른으로부터 들었던 인상 깊은 이야기 중의 하나는, "우리가 이 먼 곳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누군가(그러니까 어머니)가 나의 안위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였다. 하지만 기억을 지워나가고 있는 우리 엄마는 당신 딸의 안위를 더 이상 기도할 수가 없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세상 끝날까지 그 과정이 되도록이면 '무탈'하기를 기도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