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세돌을 넘어서고 내 주변에서 슬슬 금기어인 그 단어
'둘째'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몇 년째 개인 창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둘째는 사실 내 인생에서 살짝 미뤄졌던 과제였는데
아이가 4살이 넘어가니 어느 순간 그 단어를 흘려들을 수가 없었기에, 나름 둘째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워킹맘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외롭고 아쉬우니 둘은 꼭 낳자 와 한 명이 MAX 요 내 에너지는 이 아이에게 올인한다 는 외동파로 나뉘는데 난 의외로 전자였다. 나도 미우나 고우나 언니가 있어 평생 적적하지 않았는데, 내 아이는 외롭게 클 수 없지! 란 단순한 마음이었지만,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진지하게 고민하고 보니 정말 복잡다단한 문젯거리요 계륵이었다.
차라리 사회적 관념적으로 내가 둘째를 안 낳으면 돌로 때려서 처단하던가,
옛날 옛적 조선시대처럼 남자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가 소박맞고 내쫓기는 것이었더라면
더 선택이 쉬울지도 모르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쉽게도 지금은 2천 년대요, 딩크족 비혼족이 즐비한 한국사회에 출산율이 1인당 1명 미만인 판국에 형제/자매를 만들어준다는 이 선택은 온전히 내 책임일 게 뻔해 보였다.
나는 기획자 엄마이므로 논리적으로 접근해보자며 둘째를 떠올리며 엑셀을 켜 내 인생 계획표를 쓰기 시작했다. 먼저 내 나이를 기준으로 전체 100세 플랜을 써 내려갔고, 그 사이에 첫째인 아들의 나이와 생길지도 모르는? 둘째의 나이를 적어보았다. 엑셀로 조건들을 나열해보니 문제점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일단 나이차에서부터 한 발 늦은 셈이었다.
빨리 낳으면 5살 차이 늦으면 6살 차이로 벌어지다 보니 첫째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형국이었다. 인스타로 #4살차이남매 #5살차이남매 #6살차이남매 를 검색하는 수고도 마땅히 실행했으나 나이 차이가 벌어질수록 섞이지 않는 어색한 형제자매의 사진이 등장했다. 이는 내가 둘째 유치원에 등원을 해줌과 동시에 중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하며, 첫째 아이 대입을 준비하며 중학교 사춘기를 케어해야 하는 문제에 도달함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보통 3살 차이 이내로 아이를 계획하는구나. 사업 준비를 하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치솟았지만 나도 같이 미룬 것이기에 화낼 도리가 없었다. 도리어 내년 즈음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1분 1초로 초조해졌다.
둘째로 아이를 키울 체력이 나날이 줄어가고 있는 생물학적 문제에 직면했다.
나는 활발한 사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고 등원과 퇴근 후 저녁 육아를 도맡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둘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1명의 육아를 전담 중인데, 복직 후 2년 만에 쓸개 수술을 했고 육아를 전반적으로 맡게 됨으로써 이 기간 동안 체력이 말도 안 되게 급감하였다. 이런 와중에 둘째를 반 칠십이 넘은 나이에 키우게 된다면 회사생활은 물론이요 육아를 꾸려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마흔 줄이 넘어 아이를 낳아 키우시는 엄마들이 즐비한 요즘이지만 이 문제는 나를 주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셋째로 워킹맘의 또 다른 자아인 커리어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활발히 업무를 진행할 과장 1년 차 정도 된 시기라 이 시기에 아이를 낳고 돌아오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올려둔 이력 사이트에서도 간간이 오퍼가 들어오고 있었고,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많은 내게 그런 부분을 충족할 자리로 오퍼가 간혹 생기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직장 어린이집을 옮기는 것부터 출퇴근 거리의 변화에 업무 스타일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어 마음 한편에 접어두었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일렁거렸다. 낳고 도전해도 되니까 라기에는 아이가 2명이 된 순간 몰려올 스케줄링의 문제가 머리를 흔들었다. 첫째를 낳고서 아직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던 친정엄마와 스케줄링을 하며 어린이집에서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으며 눈물을 쏟아냈던 육아 시기가 생각나니, 환경 변화가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금방 그만두고 싶지 않아 도전하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만 가고 있기에, 일인지 둘째인지 이 문제는 아직까지 지속형이다. 누군가는 내게 둘째를 낳는 순간 일적으로는 포기해야 할 거라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낳고 움직이고 자유롭게 일하라고도 했다. 이 상황에서 더 나아가려면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고, 성장하려면 고통이 수반된다고 하는데 왜 이 고통은 워킹맘만의 문제인 것인지 고민스럽다. 남편은 이런 고민 없이 당장 낳자 즐겁게 키우자고 하는데 내가 꼬인 것인지, 아직도 양성평등 육아가 완벽하게 발전하지 못한 과도기 사회에서 폭풍을 맞기가 두렵다.
사실 둘까지 낳아 조화롭게 키우는 워킹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기업에 트렌디하고 젊은이들이 많은 내 직장에서 주변엔 그런 분들이 드물었다. 아이 한 명인 기혼녀도 찾아보기 힘들고 두 명은 더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든 사업부에 있고 갈수록 연령이 낮아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저녁 육아를 위해서는 술자리 참석도, 야근도 자제하게 되는데 연차가 찰수록 이 문제는 계속 생기고, 워라벨이냐 일적인 성취냐.. 요즘 시대 MZ세대들의 숙제일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순간에도 시시각각 시간은 흐르고 둘째와 첫째의 나이차는 벌어지고 있으니 맘이 정말 힘들다. 둘째는 사고라는 주변인들의 말들이 생각나고.. 과연 이 고민의 끝에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우리 때 엄마들처럼 자연스럽게 선택을 하기 어려울까. 엄마들 때와는 다르게 자유와 선택지가 너무나 많았고 풍족하게 커왔다는 생각이 든다. 벌이를 위해 일을 하지만, 자아성취를 위한 일도 겸하고 있고, 회사에서의 성취와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겸업하는 투잡러니까 이렇게 이 문제에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가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오늘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빨리 낳을걸 혹은 그때 더 일적으로 기반을 다져둘걸 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어떻게 하면 최적의 선택이 될지 가늠하고 또 가늠해본다.
물론 아이를 키우며 자식은 사랑이요 삶의 희망 활력소임을 느꼈지만, 나는 딩크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 강요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다이빙을 하며, 요가를 다니며, 맛집을 뽀개며 삶의 희망과 활력소를 찾을 수도 있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자식처럼 키워볼 수도 있을 일이기에. 이 다양성의 시대에 부모로서의 자아가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의 끝에 내 아이가 형제/남매가 될지 결론은 없지만 외동으로 키우던 형제로 키우던 다양한 가족이 있고, 그 속에서 아이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 속에서 희생만 하는 워킹맘이 아니라 나름 일로도 가정으로도 행복한 중간값의 엄마로 살아나가고 싶다. 이렇게 끼인 채로 은퇴까지 고민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