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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든지 나의 페이스대로

오래오래 수영을 하고 싶다면,

by 김혜미
무엇을 하든지 나의 페이스대로

하루는 한 아주머님과 둘이 수영 레슨을 받은 날이 있다. 첫만남 이후로, 웬만하면 레슨이 겹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 평소처럼 선생님의 영법 지시에 따라 최대한 쉼 없이 하나씩 척척 해내고 있었다. 지치지 않고 해내는 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건지, 내심 부러웠던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날 견제하고, 신경 쓰시는 게 눈치 없는 내가 파악할 정도로 확연히 드러났다. 그래도 사람을 첫인상으로 단정 지으면 안 되니 지금의 시간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물을 마구마구 휘저었다. 그럼에도, 첫인상과 첫 대화로 사람과의 거리를 두는 나의 성향을 한 번에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수영을 하다가도, 샤워하고 나와서도, 계속 신경이 쓰이도록 하는 개인적인 질문을 많이 하셨다. 당시에 가지고 있던 수영 장비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물어보는 거까지는 당연히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친절히 알려드렸다. 그런데 조금씩 선을 넘으며 다가오셨다. 수영은 언제, 몇 시에, 얼마큼 하는지 하나하나 꼬치꼬치 첫 만남부터 반말로 물어보시는데 순간 기분이 확 나빠져 버렸다. 정말 지극히 드물게 몇 년에 한 번씩 나와 엮이는 사람의 부류가 있다면, 나를 따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학창 시절에 이러한 비슷한 문제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입시에 한참 예민한 고등학생 때, 늘 상위권에 있는 내가 몇 친구들에게는 부러운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읽는 책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집을 푸는지, 학원은 어디 다니고, 필기는 언제 어떻게 집중해서 하는지 하나하나 모조리 따라 하려는 친구들과 엮여 한창 예민한 시기에 절정을 찍고 내려왔었다. 그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불현듯 학창 시절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때 느꼈던 그 불쾌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불쾌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체 이유가 뭘까.’


깊은 생각 끝에 일단 내린 결론은 바로, ‘자신의 페이스를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이다. 학창 시절 때의 그들도, 수영장에서 만난 아주머님도 자신의 페이스를 못 찾고, 잘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타인의 페이스를 따라가려고 했다. 타인의 페이스에 영감을 받고, 자신의 목표를 새로 정립하도록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은 서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늘 영감을 받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자신의 페이스를 못 찾고 여기저기 휘청휘청 다니며 타인과의 선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도 있다. 이 시기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도 분명히 혼란에 빠져 누군가에게 안 좋은 감정을 준 사람이었을 테이다. 그렇지만 얼른 그 시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간다면, 더 나아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해 준다면 혼란의 시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게 참 중요한 거 같다. 특히, 개인 운동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경쟁 스포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양면성을 띤 수영의 경우 더더욱 말이다. 가끔은 나도 어느새 악한 천사의 속삭임으로 ‘저 사람 진짜 힘도 세고, 앞으로 잘 나아가지?’를 들으며 속으로 부러워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레인마다 서로 안 보이게 칸막이가 쳐져 있는 수영장이 아닌 이상, 수영인들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자신과 남을 비교하기에도 쉬운 환경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한 번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단연코 수영에 재미를 붙이고, 오랫동안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뒷사람이 너무 바짝 쫓아와서 지레 겁먹고 위축이 된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천천히 도는 레인으로 옮기면 된다. 그리고 뒷사람이 쫓아오다가 앞사람의 발이 내 눈앞에 보이면 알아서 멈추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뒤에 쫓아오던 사람도 몇 년 전에는 거북이처럼 아주 느긋한 페이스를 가진 사람이었으니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다.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응원해주고 싶고, 옛날의 내 모습이 그려져서 괜히 뭉클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또 만약, 함께 수업받는 사람이 정말 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수영을 배우고 싶다면, 부드럽게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다가가면 좋을 거 같다. 누군가와 함께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얼마나 연습 시간에 투자하는지도 돌이켜 보면 좋지 않을까.


수영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으며 오래오래 수영하기를 바란다.

-모든 수영인에게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길 바라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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