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미 Jun 02. 2024

초보운전

삶과 문화 (Life & Culture)

초보운전

모두에겐 처음이 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푸르른 잎들이 매달린 여름, 가장 좋아하는 나라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인천공항보다 더 많이 들르는 듯한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공항'. 그 덕에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날 풍경을 대강 외운 상태였다. 평소처럼 운전자 바로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가방을 끌어안으며 멍하니 익숙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의아한 점이 하나 생겼다. 나의 시선은 차 뒷유리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유독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무엇하나 걸리는 것 없는 뒷유리를 통과하여 운전자와 조수석을 바라보며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아, 구석에 있어야 할 스티커가 하나도 안 붙여져 있었다. 그 어디에도.


한국의 도로 위, 시원하게 달리는 차들을 지켜보면 휘황찬란한 스티커가 한구석에 붙여져 있는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대게 '초보운전', '먼저 가세요', '아이가 타고 있어요' 등이다. 가끔은 누가 봐도 귀여운 일러스트 아이들의 모습이나 병아리가 함께 달려있다. 그럴 때면 운전자분 센스 있다고 생각하며 귀여운 스티커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차 뒷유리 스티커들은 어쩐 일인지 여태껏 수많은 나라를 다니는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이 메모를 쓴 후, 프랑스에서 몇 번 표시를 보았다. 그곳에선 ‘A’ 스티커 딱 하나를 붙이고 다닌다).


새삼 ‘초보’에 대한 의미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사전적 정의는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 /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익힐 때의 그 처음 단계나 수준’이다. 문득 '처음'이라는 단어도 궁금해졌다. '처음',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을 의미한다. 처음의 반대말은 끝이라고 번뜩 떠오르는데, 막상 초보의 반의어는 쉽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처음과 초보에 대해서는 차 뒷문에서도 흔히 광고되는 단어일정도로 많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 단어들이 강조되게 된 배후의 단어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자 스스로에 적지 않게 놀랐다. '초보의 반의어는 능수능란함일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나무위키에서 초보의 반의어로 '고수'를 알려주었다. '고수',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에 매우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그날을 계기로 그동안 처음과 초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시도하기 어려워하고, 언급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기까지 했던 찰나들이 천천히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왜 꼭 무언가를 할 때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을까, 왜 무언가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처음과 초보에 기죽을 필요도, 혹여나 어떤 분야의 고수라 하여도 의기양양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그저 내가 하는 대로만,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즐길 줄 알면 되는 보통 사람이어도 되는데 말이다.


처음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첫 헝가리 여행을 즐기던 한겨울, 스케이트를 배우겠다며 홀로 입장권을 끊고 링크장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서던 때였다. 어렸을 적, 인라인스케이트도 제대로 탈 줄 몰라서 포기하고 바닥에 바로 발이 닿지 않는 건 하나도 가까이하지 않던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용기와 자신감으로 타국에서 스케이트를 타려 했다. 시야를 바닥에서 뗄 수 없고 엉덩이는 오리처럼 쭉 내밀며 엉거주춤 입구에서 서성이던 때, 헝가리 주민께서 손을 건네줄까라며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타국에서 받은 갑작스러운 호의에 큰 감동과 감사함을 느낀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두려움의 감정을 토로하였고 그러던 내게 차분한 말로 마음을 안정시켜 주셨다.


‘There’s a first time for everything’


스케이트를 처음 배운 그날 이후로 무언가를 시도할 때면, 계속해서 링크장에서 만난 헝가리인이 해주었던 말이 맴돌았다. '모든 것엔 처음이 있어, 처음은 모두에게 있어.' 맞다, 무엇을 하든 다 처음이 있다. 우리나라는 ‘처음’이라는 존재에 너무나도 큰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차 뒷유리에 붙은 스티커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나의 처음이 이미 그 일이 익숙한 다른 이들에 혹여나 해를 끼칠까, 답답해하면 어쩌나에 대한 지나친 걱정까지 한다. 더 나아가, 미안해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첫 용기를 타인에게 설명해야 하고, 조바심과 미안함까지 느끼는 문화가 좀 크게 자리 잡힌 거 같다.



사실,

그럴 필요 없다.

모두에게 처음이 있다.

처음부터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시원하게 달릴 수도 없다.

운전을 아무리 느리게, 삐뚤어지게 주차할지라도

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처음을 공감하고

조용히 기다리며 격려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되새겨본다.

‘There’s a first time for everything’


Budapest, Hungary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