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미 Jun 09. 2024

같은 공간, 같은 시선 VS 같은 공간, 다른 시선

삶과 문화 (Life & Culture)

같은 공간, 같은 시선

몽롱함에 둘러싸여 모든 기억이 희미해진 여행지, '브뤼허(Brugge)'에서 몇 안 되는 선명한 기억을 꺼내어 보려 한다. 또렷한 추억 중, 첫 번째는 몽롱함에 가장 큰 기둥 역할을 했던 '건축 양식'이다. '겐트(Gent)'라는 지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브뤼허역에 내린 후 도심으로 걸어가는 길에서부터 이곳은 남다른 동네라는 직감이 들었다. 도심에서 겐트로 되돌아가는 길에선 '이곳은 지역 자체가 예술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나왔다. 그곳에서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보이는 건축 양식에 사로잡혀 입이 떡 벌어졌다. 건물은 대개 레고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듯한 알록달록한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붕은 계단식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있는 덕분에 장난감 집을 바라보는 듯한 동심과 생생함이 어우러졌다. 한창 크리스마스 축제를 준비하는 시기라 더욱 아기자기함과 알록달록함이 상기된 것도 있을 테다. 또한 상가들뿐만이 아니라, 가정집마저도 빼먹을 수 없는 중세 시대 'the travée bourgeoise' 건축 양식으로 놀라운 통일성을 보여주던 동네였다(실제로, 이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독특함과 통일성에 사로잡히다 보니,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중세 시대에 도착한 듯한 몽롱함이 주어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때문에, 언제 다시 가도 브뤼허에서의 기억은 몽롱한 조각들로 남겨지지 않을까.


두 번째는 작지만, 한껏 왁자지껄했던 카페에서의 시간이다. 수없이 찾아간 카페에서의 선명한 기억이라니, 새삼스러울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간 곳은 두 청년이었다. 그들은 아담한 간이 테이블을 둘 사이에 두고 보드게임에 진지한 눈빛을 공유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음은 그들의 온정신이 카드에 사로잡히기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마치 그들 주위로 방음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고, 여러 소음은 방음벽을 통해 과감하게 튕겨 나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 활기찬 대낮, 대학생쯤 보이는 두 청년', 세 조합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보드게임 리그가 꽤 인상적이었다. 대낮 크리스마스 축제로 열기가 뜨거운 밖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기 바쁜 바깥과 대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카페가 아니고서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 카드라는 걸 주고받아 본 적 없는 내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하물며, 한국 카페에서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모니터를 두들기는 사람과 수다를 나누는 사람, 사진을 찍고 찍히며 예쁜 사진을 골라주는 사람 등의 부류가 존재했다. 사람들의 대화 내용, 얼굴, 행동보다 또렷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디에나 껴있는 핸드폰과의 대화였다. 책상 위든, 우리의 손이든, 눈이든 늘 껴있는 무시무시한 핸드폰.


그날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카페에 가면 상대와 함께하는 순간을 더 자세히 들여보고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선을 공유하며 그 순간에 몰두하던 두 청년처럼.


Brugge, Belgium 2023

같은 공간, 다른 시선

브뤼허에서의 선명했던 두 번째 추억이 떠오르던 날이었다. 부다페스트 생활 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쏟아져 있는 일기장과 노트북을 가지고 ‘massolit books and cafe(좋아하는 카페 중 한 곳이다)’에 들렸다. 입구를 드나드는 사람들, 낡은 원목 원형 테이블이 오손도손 마련되어 있는 작은 공간에서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향한 시선을 잠시 거두며 구부정한 상체를 열던 중, 청동색 물감으로 칠해진 문 앞을 서성이는 여행자들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인접한 국가의 사람임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기 한참 전, 타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여행에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한다. 요즘은 따뜻함을 건네기도, 주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거 같다. 세상의 변화라는 변명으로 잠시 온기를 미루어보고, 여행자를 향하던 두 눈을 다시 노트북으로 옮겼다. 그러다 다시금 우연히 그들의 한 모습이 인상 깊게 눈에 새겨졌다.


그들의 두 눈이 향해있는 곳, 우정 또는 무언가를 가로막는 물건이 그렇게 도드라질 수 없었다. 카페에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항상 핸드폰에 담고 싶은 카페임은 인정한다), 자리를 양보받아 앉은 후 조용히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한참을 작은 화면만 응시하다가 음료가 나오자,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듯싶더니 금세 전자 괴물에 빠져들었다. 그녀들을 주변으로 서로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화하는 사람들의 상반되는 모습이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유독 그녀들의 시선이 부각되었다.


문득 '브뤼허 카페'에서 보드게임에 진지하게 임하던 두 청년의 모습이 빠르게 스쳤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같은 시선일 때와 다른 시선일 때의 분위기는 크게 대조되었다. 함께 있어 오손도손 같이 시간을 공유하는 분위기와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듯한 분위기. 후자의 경우, 어떤 대화 주제이든 어느새 핸드폰이라는 괴물이 늘 사이에 끼어있었다. 이를 계기로 깨달았고, 다짐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핸드폰 세계에 젖지 말고, 함께하는 사람의 두 눈과 입에 더 집중하고, 귀 기울이고, 오롯이 순간을 느끼는 연습을 하자고 말이다.


Budapest, Hungary, 2024

[번외]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누군가와 카페에 갈 때면 대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이 움츠러드는 순간이 생겼다. 간혹 나의 눈동자보다 다른 곳을 응시하는 상대를 볼 때이다. 나의 두 시선을 핸드폰에서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로 가져가 보니, 나를 향하지 않는 상대의 시선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반대로, 날 계속해서 바라보는, 집중하는 두 시선도 더 또렷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지금도 연습 중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지금도 바라는 중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선을 바라보는 상대들이 많아지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