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살 (EAT & FAT)
재료 본연의 맛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물론이며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나선다. 필자는 한국에서 웬만한 음식점은 대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어 맛집 검색에 전전긍긍하며 힘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외국에 나올 때면, 희한하게도 구글 지도에 많이 기댄다. ‘이 동네에선 어느 음식점, 카페, 바가 괜찮지?’ 검색하고 방문하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흔히들 찾아가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사람들의 리뷰와 평점에 기대며 찾아다니는지 이유를 떠올려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외국에서도 한식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나마 한식과 가까운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익숙한 음식을 찾으려 한다. 현지 음식에 적응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말하는 여행지도 있지만 필자는 틈틈이 쌀과 김치, 국물을 먹어줘야 여행이 가능한 사람이다. 지금은 현지 음식과의 타협 부분에선 이미 마음을 내려놓았다. 둘째, 미리 검색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아무 곳은 정말 아무 식당일 수 있다는 점이다. 꼼꼼하게 검색을 하지 않고 다니던 당시, 이미 호되게 어처구니없이 음식 값을 낭비한 적이 많다. 따라서, 외국에서만큼은 음식을 먹으러 갈 때 나름 꼼꼼하게 따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동안 스쳐 간 식탁을 반추해 보면 익숙한 식재료들이 예상보다 많다. 그 나라만의 특별한 식재료는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본래 알던 재료이다. 기존에 알던 식재료에서 숨겨진 맛을 발견할 때마다 꽤 흥미롭다.
예를 들면, 냉장고에서 각각 따로 기다리는 고수, 감자, 가지, 루콜라, 토마토, 브로콜리, 양파, 아보카도, 치즈 등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요리와 가깝지 않은 필자는 제일 먼저 ‘이 재료들을 어떻게 활용해 무엇을 해 먹어야 할까?’ 고민부터 스친다. 이어서, 손질이 귀찮지는 않은지, 귀찮더라도 밥을 안쳐야 할지, 엉덩이는 무겁게 머릿속은 빠르게 잔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테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러했을테다. 하지만, 점차 견문을 하나씩 넓혀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익숙한 위 재료들의 본연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루꼴라가 바게트, 잠봉, 고트치즈(염소치즈)를 만나 루콜라 샌드위치가 되었을 때,
아보카도가 으깨져 바삭한 식빵 위에 눌어붙고 그 위에 달걀과 베이컨이 올려져 있을 때,
구운 연어와 곁들여진 삶은 감자, 고구마 등 구황작물의 만남이 있을 때,
타파스 속 칵테일 새우와 감자, 치즈의 조합이 탄생할 때,
녹색 채소들 속에 무심한 듯 툭툭 던져진 오이, 토마토, 치즈와 그 위에 뿌려진 발사믹 소스 등
가끔은 루콜라와 토마토처럼 재료 자체의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맛보았고, 어느 때는 각자 뛰어다니던 재료들이 한 곳에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맛을 경험했다. 지금까지의 온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을 때, 외국에서 만난 음식은 대개 주어진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고 있었다. 최대한 자극적인 소스를 가미시키려 하거나, 바싹바싹 튀김으로써 기존의 맛을 덮어 기름과 소스의 맛으로 재탄생시키려 하지 않았다. 단순히 재료를 푹 삶거나 찌고, 올리브오일에 볶고, 소스보다는 파슬리나 후추 등의 가루를 툭툭 뿌려 마무리 된 음식을 많이 만났다. 즉, 재료의 맛을 무언가에 숨기지 않는다. 반대로, 한국의 음식을 떠올려 보면 자극적인 음식이 식탁 위에 자주 등장해야 익숙한 맛이다. 고추장과 된장이 듬뿍 들어간 찌개, 수많은 소스로 만들어지는 휘황찬란한 파스타와 피자, 맵기 강도가 천차만별인 떡볶이, 이리저리 볶고 튀기는 각종 육류 등. 그래서였을까, 채소와 과일의 신선한 상큼함을 느끼며, 구황작물의 고소함을 맛보며, 고기와 해산물의 담백함을 즐길 때 더욱 재료 본연의 맛에 사로잡혀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
이제는 냉장고에 토마토와 오이, 치즈가 있다면 발사믹 소스를 곁들여 샐러드를 후딱 만들어 내고, 루콜라와 잠봉이 있다면 빵을 사 와서 조합하여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어느새 나는 주어진 재료를 활용하여 생생한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