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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Aug 25. 2024

술과 가까워진 사람

맛과 살 [EAT+FAT]

술과 가까워진 사람

헝가리의 작은 마을, ‘Visegrad(비셰그라드)’ 지역을 홀로 여행하던 날이었다.

비셰그라드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던 요새가 있었다. '사람들이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직접 올라가지 않아도 멀리서 보는 맛이 있던 13세기에 지어진 커다란 요새였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아래에서 눈으로만 담고,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작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슬그머니 적적함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당시, 비수기와 평일이 겹치는 바람에 조용했던 마을은 더욱 고요했다. 결국, 관광안내소 직원의 설명을 듣고 나도 저 성을 올라가 보자라고 마음을 바꾸었고, 천천히 등산해 보기로 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다급하게 도망쳐 내려왔던 기억이 비셰그라드 요새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추억이다. 


무사히 하산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생맥주를 팔 듯 보이는 펍이었다. 기계를 통해 콸콸 나온 맥주가 듬뿍 담긴 생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며, 때마침 펼쳐 본 책은 ‘아무튼, 술'이었다. 갑갑했던 갈증이 벌컥벌컥 들이켜는 맥주를 통해 발끝까지 시원하게 풀려 내려가던 순간, '언제부터 술과 가까워졌지?'라는 질문이 나의 목구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필자는 본디 술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술에 대한 선입견과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다녔던 교회에서는 음주는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체득하게 했고,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선 술이란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배웠다. 성인이 되어, 신입생 시절에 맛본 술은 대개 소주와 맥주, 각종 맛이 다 섞인 칵테일이었기에 맛이 없어서 입을 안 대었다. 또, 마시며 취하는 분위기에 함께 신나게 취해버리고 난 후로는 ‘난 알코올과 안 맞는 사람이구나.’하며 술을 멀리했다. 술을 멀리할 이유는 은근히 많다. 곁들이는 안주들이 훌륭한 한국에선 더더욱. 


술과 멀리 지내던 사람이 첫 외국 여행을 홀로 떠났다고 생각해 보자. 유럽의 골목골목 발걸음을 뗄 때마다 좁고 깊은 우물 안에 갇혀있던 필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게다가, 첫 유럽 여행은 '파리'와 '런던'이었다. 대낮부터 테라스에서 생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 어디를 가나 와인잔이 놓인 테이블, 카페에서도 술을 쉽게 찾고 주문할 수 있는 분위기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현지에서 오래 머물며 여행인지, 이민 생활인지 헷갈릴 즈음엔 술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며 좁은 우물 안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짐작할 수 있듯이, 술에 대한 거부감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알코올을 지나치게 마시는 건 해롭다는 사실에 대한 변함은 없지만, 술을 통해 음식의 맛과 현지 문화를 잘 배우고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는 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주변 친구들은 와인을 홀짝이며 식사하거나, 더위 끝에 생맥주를 찾는 모습,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잔을 부딪칠 때마다 놀란다. ‘내가 너랑 술을 마시는 날이 오다니.’라고.


‘어쩌다 술과 가까워진 사람이 되었을까?’를 떠올려보면 사회생활의 시작이 한몫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다닌 여행의 역할이 크다.


식전에 들이키는 얼음 동동 띄운 아페롤(Aperol) 한 잔,

파스타와 곁들이는 화이트 와인 한 잔,

고기와 만나는 레드 와인 한 잔,

그 식당만의 매력을 맛보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걷던 중 잠시 들려 시원함을 들이켜는 생맥주 한 잔,

식후에 더부룩함을 내려보내는 도수 높은 위스키 한 잔


한 잔 한 잔이 몸에 들어오면서부터 어느새 술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여행하며 바뀐 모습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다. 덕분에,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찾아 마실 수 있고, 식사의 맛을 더 풍족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쁨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 것이다. 


만약, 나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술은 안 좋은 것이라는 강한 인식 아래 자란 후, 외국에 나가 매우 놀라고 있다면 혹은 두려워하고 있다면 너무 큰 적대심을 갖진 말라고 조심히 말을 건네고 싶다. 술뿐이 아닌, 무엇이든 지나친 건 다 해롭지 않을까.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간직하고 있어야 여행의 재미도 더 커지는 법이지 않을까하는 필자의 솔직한 마음이다. 


헝가리, 작은 마을 Visegrad
2024, 02. Visegrad,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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