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살 (EAT & FAT)
적재적소에 위치한 카페
리스본 근교의 해변가를 품고 있는 마을, ‘Oerias’에서 적재적소에 위치한 장소를 오랜만에 만났다. 오에리아스 기차역 앞에는 특별한 것 없이 투박한 외관의 카페가 한 곳 있다. 한국의 휘황찬란한 카페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밋밋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는 근처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맑은 하늘로부터 땅의 곳곳을 비추는 햇살과 발맞추어 움직이는 나뭇잎, 그림자들의 설렁설렁한 춤, 사람들 피부에 그을린 빛이 참으로 아름다운 해 질 녘이었다. 해수욕으로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그날은 늘 지나치기만 했던 카페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에스프레소 한 잔만 잠깐 마시고 나갈 찰나, 햇살에 못 이겨 생맥주까지 시원하게 들이켜던 날이었다. 커피와 맥주를 마시는 동안 여러 사람이 오며 가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아, 이곳 ‘Antigo fundio cafe’는 동네 사람들이 필요한 곳에 우두커니 딱 자리를 잡고 있구나. 이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의 의미에서 그치지 않았다. 작은 마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동네의 중심에 위치한 유일한 카페이자, 맥주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아담한 바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아침 일찍 부지런히 문을 열고, 주민들의 귀가 시간까지 곁을 지켜준다. 이러한 이유로 현지인은 물론이며 우연히 지나치던 이방인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이곳으로 향한다. 나의 발걸음 또한.
반대로, 비교군인 한국에서의 카페 거리를 떠올려 보면 불필요한 곳에 카페, 식당 등이 즐비하다. 도심엔 한 도로를 건너 마주 보며 동일한 혹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가 또 있고, 카페가 있는 건물의 옆 건물은 새로운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고 놀랄만한 혜화동이나 종로 등의 골목 구석구석에도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다. 굳이 카페와 식당을 검색하지 않아도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나의 목마름과 배고픔의 욕구를 손쉽게 채울 수 있는 곳, ‘한국’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무미건조하다. 타들어 갈 것처럼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상황에서 우연히 식당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과 동네 사람들이 한 군데로 모여 인사를 주고받는 따뜻함은 온데간데없다.
처음 혹은 오랜만에 만난 적재적소에 놓인 카페 안에서는 커피와 맥주를 목 넘김 할 때마다, 보고 들리는 오에리아스 현지인들의 약속된 만남과 뜻밖의 만남으로 인한 반가움, 하루 끝 피로를 풀고 가는 사람들의 편안함을 느꼈다. 인간의 욕구를 집 밖만 나가면 어디서든 즉시 채워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적재적소한 공간으로 구성된 세상이라면 어떨까라는 바람이 스쳤다. 만약, 후자대로 동네가 구성이 된다면 정겨움과 따뜻함이 더 커지는 세상이 되어있을까?
먼 훗날에 후자의 세상이 만들어지길 희망하며, 필자는 다음 날도 이곳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따뜻하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