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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Jun 16. 2024

'독립'이 주는 재미

삶과 문화 (Life & Culture)

'독립'이 주는 재미

'독립', 다른 것에 속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상태.

독립이 주는 큰 재미는 직접 살고 싶은 환경을 꿈꾸고,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자마자 숙명이라는 명분으로 주어지는 '대한민국' 국적, 보호자가 사는 곳이기에 나도 살아야 하는 지역과 우리 집 등.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태어났다는 이유로 정해진 수많은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다행히도, 어린 나이에는 숙명에 대한 사색을 해보지 않았다.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등 미래의 독립을 꿈꿔보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독립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무언의 해방감도 부쩍 가까워졌다. 고등학생 때,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너무나도 달랐던 외국의 교육 방식, 그들의 삶과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동시에 꿈도 커져만 갔다. '아, 저기서 살고 싶다.'의 막연한 꿈이 아닌 '우와, 저런 곳이 있네? 이 나라는 꼭 여행가보고 싶다.'와 같은 다소 실현가능한 꿈부터 차근차근. 마음속의 버킷리스트는 툭하면 여행을 떠나도록 용기를 건네주었고, 숙련된 여행의 경험은 더 이상 단기간 속성이 아닌 몇 개월씩 지내고 돌아오는 이민 생활 같은 여행의 시간을 잦아지게 했다. 다른 나라에서 오래 머물수록 내게 편안한 나라, 마음에 드는 공간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숙소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세월이 흘러 뒤늦게 독립을 이룬 사람들(호주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와 요트에서 생활하는 부부도 보았다), 어려서부터 먼 곳으로 나와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속에 있던 나의 꿈이 점점 부풀어졌다. 이처럼, 독립하고 나서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얼마나 좋은 기회이며 모험인가. 


감사하게도, 훗날 살고 싶은 나라가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래 지내온 동네여도 마음은 불편할 수 있는데, 희한하게도 성인이 되어 늦게 찾아간 그 나라만 가면 편안해진다. 걱정 없이 마음껏 좋아하게 된다. 언제 가든 한결같이 날 맞이해 준다. 오스만제국의 식민지 시절 때 영향받은 터키식 목욕탕도, 19C에 지어진 'Keleti' 기차역도, 언제 가든 변함없는 'Margit' 공원도, 여름엔 솔솔 불어오는 바람으로, 겨울엔 그곳만의 온기로 가득한 숙소도. 고스란히 한 자리에서 머물며 그곳을 스치는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풍겨지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마음에 든다. 내겐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그렇다. 


헝가리에선 '유행'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유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대개 의식하지 않는다. 날씨가 어떻든, 타인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쓰고 싶은 모자를 쓰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며 다닌다. 각자의 향을 풍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만의 스타일, 분위기가 은은히 풍기며 만들어주는 다양성을 좋아한다, 나는. 그 향을 강하게 맡을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지 않을까. 정수리를 쏙 숨겨주는 모자를 통해서 말이다. 머리 꽁무니가 뾰족이 튀어나온 모자, 직접 뜨개질을 한 듯한 포근한 모자, 알록달록한 빵모자(핫핑크색 모자를 쓴 할머님이 아직도 인상적 일정도로 고우셨다), 머랭 반죽 같은 모자, 모자 위에 헤드셋을 끼는 스타일 등. 자신의 취향이 다채롭게 곳곳에 묻어져 있는 덕분에, 부다페스트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매력적이다. 또, 이속에 녹아 자유로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의 모습을 좋아한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삶을 '행복'의 한 단어로 함축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곳에 있을 때면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자유롭다. 


변함없이 빛나는 부다페스트를 통해서 깨달았다. 태어나지 않은 국가에서의 편안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태어난 국가가 아닌데도 

익숙한 문화, 사람, 환경이 아닌데도 

이토록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 점을.

무조건 익숙한 곳이 편안하고 행복한 곳은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 마음속에 자신과 맞는 나라, 도시를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미어질 때면 달려가 기대어 쉴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마음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무엇이 되었든. 


Hungary, Budapes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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