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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May 26. 2024

꼬불꼬불한 길에선 양보가 피어나

삶과 문화 (Life & Culture)

꼬불꼬불한 길에선 양보가 피어나

그날도 어김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맨 오른쪽 앞의 한 자리이자 운전기사님 옆인 조수석을 찾고 기다린다. 조수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조수석에 앉으면 운전자와 같은 시선으로 환하게 펼쳐진 유리창 밖을 장애물 없이 바라볼 수 있다. 가끔은 VR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신호에 멈춰 섰을 때 관찰할 수 있는 보행자들(사람들의 비슷한 옷차림이라든지 헐레벌떡 급히 뛰어가는 사람드의 심리를 상상해본다든지),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한국 간판과 몰려있는 비슷한 건물들 등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목적지로 향한다. 두 번째로, 운전자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저 멀리서 급하게 달려오는 손님을 위해 멈춰주는 분, 뒤늦게 와 문을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고 냉정히 앞길로 전진하시는 분, 타는 승객들에게 계속해서 친절히 인사해 주시는 분 등 기사님들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재미라고 여기는 세 번째는 자리 눈치 게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출퇴근길이면 누구나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앉을 자리를 찾는다. 대개 너무 힘든 날, 대중교통 안에서조차 서 있게 된다면 얼른 앉고 싶어 곁눈질 레이더를 바삐 돌릴 테다. 이 게임에서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좌석은 맨 앞 조수석이다. 조수석은 대부분 1인석 좌석이 많기 때문에, 흔히 맨 앞에 있기에 사람들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수 있어 편안한 이동시간이 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고집하는 이유이다. 이 매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슬며시, 언제 한 번은 손에 들던 핸드폰을 내려두고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라고 추천을 건네어 본다.


한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TGV 기차를 타고 몇 시간 이동하면 맞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안시(Annecy)'를 여행 중이었다. 다정한 시골 마을에 숙소가 있던 덕분에 현지인의 생활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현지화되었다. 그날도 버스 시간을 혹여나 놓칠까(하루에 2~3대 운영하는 시골 마을이었다.) 전날부터 여러 번 미리 검색해 본 덕분에, 버스에 무사히 몸을 실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는 기사님 곁을 지켰다. 기사님과 약간의 거리를 두며 가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경관보다 더 시선을 이끄는 모습이 있다.


바로, 운전자들끼리 손을 흔들며 배려하는 자세이다.

도로 위에서 이들은 ‘배려’를 배웠다.

서로 돌아가며 다섯 손가락을 펼친다.


‘먼저 지나가세요.’의 의미에 한 번,

‘고맙습니다.’라는 의미에 한 번,

‘별말씀을요.’라는 의미에 한 번

운전자는 3번 정도의 다섯 손가락을 보여주고, 서로 편안한 상대의 얼굴을 마주한다.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피어나는 다섯 손가락은

'나', '타인'의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을 선물해 준다.

그 따스함은 하루 종일 간직되어 베풀어진다. 널리, 널리.


어느새 구불구불한 도로는 온기로 가득 차 있다.


France, Annecy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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