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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처음이니까

[에세이] 나는 카멜레온이야

by 김혜미
모든 게 처음이니까.

물속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긴장으로 요동치던 심장은 수심이 낮은 수영장에서조차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속에서 처음 겪어보는 하나하나의 것들이 생소하고 낯설었는지 나도 모르게 몸이 바들바들 떨었다. 잠시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몸이 떨리지 않냐며, 입이 너무 마르는데 정상인 거 맞냐며, 숨 쉬는 게 버거운데 괜찮은 거 맞냐며 아주 요란법석을 혼자 다 떨고 있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겁과 긴장을 먹지 않았어도 됐는데 말이다. 나처럼 겁은 많지만, 도전은 해보고 싶은 예비 다이버들에게 조금이나마 내 겁쟁이의 심정이 힘이 되어주고자, 오픈워터 기초 교육을 받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자세히 나의 언어로 기록하였다.


처음 호흡기를 물고 물속에서 코가 아닌 입으로만 숨을 쉬고 내뱉을 때의 감정은 마치,

한 이삼일 정도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다가 일어났을 때 물을 못 마셔서 입안이 말라비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답답한 이 느낌이 처음이라서 숨을 잘 쉬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어 수면으로 나가고 싶었다. 결국 몇 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하강하기를 반복했다.


처음 호흡기 되찾기 훈련을 진행할 때,

'아, 나 진짜 바다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당시, 나를 포함해 총 4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한 명씩 차례대로 모두가 잘 해내었다. 마지막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호흡기를 빼는 것까지는 어찌어찌해서 성공했는데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몇 번이고 수면으로 나왔다. 그러면 또, FM 강사님께서 나를 하강시켜주셨고 될 때까지 끝까지 붙들고 가르쳐 주셨다. 입으로 버블을 계속 뿜어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막상 내 입이 따라주지 않아 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숨 쉬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이제 막 하강하려고 로프와 호흡기를 잡고 내려가려는 찰나에, 호흡기에 달린 마우스피스가 조금이라도 깨물면 아예 뜯어질 것처럼 달랑거렸다. 순간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우선 버디들과 강사님은 바다로 하강한 직후였기에, 나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한 내 마우스피스와 함께 하강하고 있었는데 그날 유독 조류도 심하여 조금이라도 호흡기에서 손을 떼면 달랑거리는 마우스피스 따라 호흡기도 계속 들리려고 했다. 하강은 해야 했고, 조류는 심하고, 로프는 흔들거리고, 내 손은 두 개였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교육 때 열심히 배운 ‘호흡기 되찾기’를 이때 써먹을 수 있었다. 최대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입으로 버블을 내뿜으며 용기 있게 호흡기를 빼고 예비 호흡기로 교체하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던 것이다. 이날 다이빙을 하고 나와서 다이빙 로그를 작성하는데 바다에서 본 물고기보다 교육 때 배운 걸 적용해낸 스스로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Thanks to 될 때까지 연습시켜준 우리 강사님



처음 마스크 물 빼기 훈련을 진행할 때,

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본보기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이 훈련은 바다에서 마스크가 빠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꼭 연습해야 하지만 동시에 꽤 하기 싫은 훈련이다. 코로 버블을 내뿜는 선생님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려고 했으나, 계속해서 나의 마스크 속 물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따라 해 봐도 마스크에서 물이 빠지기는커녕, 도리어 물이 더 들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렌즈를 착용한 상태라서 눈도 못 뜨는 그 순간이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와서야 깨달았지만, 너무 마스크를 치켜올려 세운 탓에, 내뿜은 물과 동시에 그 공간을 통해 다시 물이 순식간에 들어왔던 거였다. 눈앞이 컴컴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찾아 꾸역꾸역 쓰는 찰나의 순간은 싫지만, 바다에서 마스크를 잃어버렸을 때를 상상해보면 무조건 잘 배워야겠다는 동기가 생길 거다.


공기가 고갈된 상태에서 버디와 예비 호흡기를 주고받는 연습을 진행할 때,

'언제 공기가 사라진다는 거지?'였다. 어리석게도 강사님께서 공기통을 잠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내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리어 당황하신 강사님께서 나를 수면으로 꺼내어, 왜 버디한테 신호를 안 보냈냐고 물었다. ‘감각이 둔했던 걸까?’ 전혀 느낌을 못 느껴서 “네? 공기통 잠그셨었어요?”라고 말하며 놀랐다. 바다가 아니었음에 천만다행이었다.


중성 부력과 호버링을 처음 시도했을 때,

'정말 모르겠다.', '바다 들어가도 되는 거 맞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 상태로 내일 당장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물속에서 부력을 맞추기 위해 필요에 따라 공기를 넣고, 빼는 그 과정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못 한다. 중성 부력에 몇 번이나 마음이 덴 내게 강사님이 건네준 어록,

'다이어트가 평생 숙제이듯, 다이버들에게 중성 부력도 평생 숙제이다.'

'그래, 혜미야! 넌 지금 한 번 해본 거뿐이야! 앞으로 여름마다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가자! 중성부력이 밥 먹듯 쉬어질 때까지!'


처음으로 발이 안 닿는 물속에 있을 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처음으로 발이 안 닿는 물속에 다녀왔다. 더는 공기를 빼지 않는 이상 물속으로 가라앉지는 않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웠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수많은 걱정과 염려를 낳았다. 이번 기회에 나의 새로운 모습을 다시 발견했다. 평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겁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발을 디딜 때,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말이다.


주변의 친한 지인들은 보통 나와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하고 싶은 게 있거나 호기심이 가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바로 도전해보고 마는 '나'와 달리, 늘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을 많이 쏟는 친구들이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난 처음 해보는 것들에 대해 호기심만을 갖고 다가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도 내가 모르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을 때, 엄청난 걱정을 한 움큼씩 쥐고 있었다. 여태까지, 주변 친구들의 두려움과 걱정을 달래주고 덜어주느라 나의 감정은 몰라봐 줬던 거였다. 그들과 똑같이, 새로운 걸 도전할 때 무서움을 느낀다. 다만, 눈에 꽂히는 무언가가 생기면 누구보다 빠르게 지르고 본다는 건 확실하다. ‘도전심’이 불타올라 걱정과 두려움이 뒷전일 뿐, 내 마음 한쪽에도 이 두 감정이 있다.


그래도 나는 모르고 지내왔던 세계를 만날 때면, 이 두 감정을 이겨낼 힘을 가졌다. 이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함’이 훨씬 더 큰 덕분에,

무작정 뛰어들고, 그 과정에서 ‘나’를 공부하며 스스로에 취하는 것!


다이빙 후, 사진 찍을 때가 제일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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