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카멜레온이야
모르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다
첫 개방 수역 교육을 하러 바다로 나갔을 때, 다들 바다가 안 무서웠는지 내 앞으로 이미 몇 명의 다이버들이 마스크와 호흡기를 쥐고, 성큼성큼 나아가서 발을 뻗고 바다로 풍덩 떨어지고 있었다. '이걸 진짜 해? 나 진짜 해?' 속에서는 아주 요동치고 있는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 채 안타깝게도 내 순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버디들의 외침, “백호 가자!”
장비까지 완벽하게 다 착용한 상태였고, 바다에는 이미 먼저 즐기고 있는 버디들과 안전하게 구해주실 강사님이 계셨다. 바다로 못 뛰어내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겁은 왜 이렇게 많았는지 몇 초면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을 최소 3분은 걸린 거 같다. 막상 바닷속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평소에 안 하던 질문들을 마구마구 물어보기 시작했다. “쌤! 호흡기는 잡고 뛰는 거죠?”, “쌤! 내려가서 어떻게 수영하고 있어요?” 이상한 질문이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자 서서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그침이 있었고, 버디들 덕분에 바다로 살포시 뛰어들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늦게 뛰어들어 민폐였지만, 날 이해해주는 이들과 처음을 함께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결국은 어찌어찌해서 발을 뻗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묵직한 내 몸이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나처럼 겁을 먹고 있는 버디와 손을 꼭 쥐고 다소 강한 햇빛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강사님을 얌전히 기다렸다.
바닷속으로 들어온 후부터는 모든 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너무 긴장한 상태로 첫 개방 수역 교육을 받은 터라, 바닷속에서 펼쳐진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잠시 꿈을 꾸고 온 것처럼 몽롱했다. BCD 공기를 빼며 하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날 배운 기초 훈련을 바닷속에서 다시 복습해보고, 강사님과 로프를 따라 조금씩 유영하며 물속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수면으로 올라와 있었다. 강사님은 다이빙만큼 안전하고 재밌는 레저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셨지만 내가 경험한 첫 바다는 '재미'보다는 '긴장과 겁의 연속'이었다. 그날 침대 위에 누워서든 생각은 '내일만 하면 끝날 거야.', '괜찮을 거야.'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재미를 느끼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버린 탓에 다이빙의 매력을 스스로 놓치고 있었다. 교육 첫날, ‘오픈 워터 자격증쯤이야! 쉽게 따고 어드밴스드 자격증까지 취득할 거야!’라고 자신감 있게 외치고 다녔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난생처음으로 바닷속 세계를 보고 온 이날의 나를 떠올리면 또 스스로 취해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다.
아직 못 본 바다의 매력이 궁금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첫 바닷속의 느낌은 분주함과 정신없는 세계 그 자체였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강사님의 지시대로 잘 따르고는 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무사히 호흡을 잘하고, 귀가 아프지 않도록 이퀄라이징을 하면서 바닥에 있는 바위와 모래들을 휘젓지 않기만을 신경 쓰기 바빴다. 특히, 마지막 날 바다 상황은 시야도, 파도도, 날씨도 교육받는 다이버에게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다이빙 샵 창문 너머로 함덕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제보다 훨씬 더 거센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자니 긴장과 두려움은 파도처럼 더 커지고 있었다.
여전히 물속으로 자진해서 뛰어 들어갈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크지만 그래도 전날보다는 조금은 나아졌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물속으로 천천히 입수했다. 바닷속에서 유영하기 위해서는 몸의 부력을 잘 조절해서 일정한 위치에 둥둥 떠다녀야 한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몸이 수면으로 붕 떠버리거나 거북이처럼 바닥에 엎드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둘 중의 하나라도 ‘안’ 하면 좋을 텐데, 공기를 잠깐만 넣으면 몸이 붕 떠버리지를 않나! 가라앉기 위해서 공기를 빼버리면 또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되지를 않나! 정말 가관이었다. '제발 둘 중 하나만 하자.'라는 심정으로 물속에서 천천히 마음을 다잡고 강사님의 여유로운 손짓과 표정의 지시에 따라 중성 부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초반에 몇 번이고 가라앉고 뜨기를 반복하던 걸 겪고 나니, 어느 순간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는 내가 아니라 물고기 떼와 살아 숨 쉬고 있는 소라를 바라보면서 유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날 시야가 좋은 게 아니라서 다들 아쉽다고 말했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물고기 떼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 날이었기에, 어떠한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이 순간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커다란 의미가 되었다. 그저, '오늘 본 바닷속도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는데 시야가 좋은 날에는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설렘과 기대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때부터 다이빙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고 있던 걸까?
교육 마지막 날 생긴 조금의 여유 덕분에 바다의 매력을 힐끔 엿보았고,
남은 매력들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첫 다이빙 이후 또 바닷속을 보러 떠났고,
여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완벽한 이유를 내세우며 계속해서 바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