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다..
조건 없는 친절함
'스케이트 배우기'에 도전하는 걸 포기한 선택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다. 그저, 잔디밭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케이트 경기를 보듯 재밌었으니까. 그런데 마음 한 편에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나 보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 우연히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또 다른 작은 야외 스케이트장을 발견했다. 그 스케이트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 다시 와서 배워야겠다!'였다. 저번처럼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고, 무조건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스링크장이 비교적 작아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아이들도 저렇게 즐겁게 안전하게 타고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였던 걸까, 아무튼 우연히 발견한 스케이트장 덕분에 또다시 용기를 얻고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다음에 한국 가서 안전하게 잘 배운 후에 타려 했었는데 말이다.
늘 새로운 도전은 떨림과 겁을 안겨줘서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기분이 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 감정, 기분,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안 해본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지만, 이것이 앞으로 나의 인생에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도 해서 다행이다. 물론, 항상 새롭게 시도할 때마다 나랑 100% 맞는 걸 단 번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음, 이건 나랑 좀 안 맞는데?' 싶으면 다시 한번 눈길 주지 않고 과감하게 다른 도전을 하러 간다. 사실, 대부분이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도전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취향에 맞는 것들도 발맞춰 점점 늘어난다. 그리고 한 번 무언가에 꽂히면, 그 취미와 몇 년, 평생 동안 즐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그중, 수영과 여행, 글쓰기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아무튼, 난 이 점이 늘 새로워, 도전을 못 멈추고 있다.
다시 찾아간 새로운 스케이트장에서는 떨림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나처럼 스케이트를 못 타거나 처음 배우는 단계인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해 둔 펭귄 4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닐까 싶어 '저,, 이번에 처음 배우는데 혹시 제가 펭귄 한 마리 써도 될까요?'라고 여쭤봤다. 다행히도, 펭귄이 남아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흔쾌한 승낙을 받았다. 어찌어찌해서 장비도 잘 받고, 옆 사람들이 어떻게 착용하는지 힐끔힐끔 보면서 스스로 장비도 척척 착용해보고, 카운터까지 엉거주춤 걸어가서 마무리 확인까지 안전하게 받았다.
"저 괜찮겠죠..? 안전하죠?"
"안전해야죠."
직원의 솔직한 조언을 듣고, 마음을 굳게 잡은 후 스케이트장 입구로 들어섰다. 막상 빙판길에 혼자 들어가려고 하니까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고, 어느 발부터 움직여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다. 입구에서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언제 들어갈까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때쯤 어떤 한 천사가 나타났다.
"Give me a hand?" 손 잡아줄까?
내가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지, 스케이트를 즐기러 온 한 남성 분께서 "손 잡아줄까?" 하며 손을 건네주셨다. 눈물 나올 뻔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땡큐를 연신 외치며, 덕분에 한 발씩 빙판에 내디뎠다. 그리고 '나 이번에 스케이트 처음 배우는 건데 너무 무서워'라고 무작정 말해버렸다. 그분은 다시 한번 명언을 날리고 빙판을 즐기러 갔다.
"There's the first time is for everything" (모든 다 처음이 있어)
이어서 더 말을 했는데 노랫소리에 묻혀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뭐든 다 처음이 있어, 그리고 처음엔 겁먹는 게 당연해"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난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의 힘이 강력한 존재인 줄 몰랐다. 잠시 스쳐 지나갈 사람에게서 들은 응원과 건네준 손 덕분에, '그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 하면서 펭귄을 잡고 한 발씩 차근차근 빙판길을 기어 다녔다. 낯선 사람의 '조건 없는 친절함' 덕분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는 펭귄을 미는 만큼 나도 앞으로 잘 나아가는 거였다. 현실에서는 생각보다 펭귄 미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려웠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리에서 빙판을 갈고 있었다. 발의 힘을 쓰기보다는 팔의 힘을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그때, 귀여운 헝가리 꼬마 아이들과 인사를 하게 되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며 손을 건네주었다. 난 또다시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조건 없이 건네는 손을 받았다.
잠깐 스텝을 가르쳐주고 떠날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나랑 같이 빙판을 돌고, 칭찬해주고, 박수 쳐주고, 조언도 해주었다. 얼떨결에 아이들에게 스케이트 개인 강습을 받고 있었다. 속성 과외의 힘이었을까, 이제 스스로 펭귄을 끌고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연이어 몇 바퀴를 돌 수 있게 되었고 스케이트의 날과 내 발은 친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꼬마 선생님들과도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이제 자신감이 붙어서, 선생님들께 물어보았다.
"나 이제 펭귄 없이 타볼까??"
돌아온 답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것과 동시에, 손을 건네주며 펭귄 없이 빙판을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신나는 노랫소리와 영어와 헝가리어, 바디랭귀지가 뒤섞인 우리의 대화 속에서 후회 없이 스케이트를 안전하게 잘 배우고 올 수 있었다. 이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 헤어졌다. 나는 꼬마 선생님들과 있었던 일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은 채로, 다뉴브 강으로 향했다. 스케이트를 아예 탈 줄 모르는 외국인을 아무 조건 없이 다가와서 가르쳐준다는 거 자체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드문 일이다. 그리고 빙판 길에 처음 발을 대고 설 수 있도록 손을 건네주며 응원해 주는 친절함도 참 감사한 일이다. 유독, 이번 헝가리 여행에서 '조건 없는 친절함, 베풂'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건 없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여행이기도 하였다.
'캐시넴(고마워요), 첫 스케이트의 경험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헝가리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