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수영이 좋고, 이런 아름다운 수영장이 있다는 게 부러워
세체니 온천 가기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세체니 온천에 가는 날이었다. 헝가리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헝가리는 온천이 몇 백개나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고, 세체니는 그중 하나였던 거였다. 그리고 세체니 온천 말고도 좋은 곳이 많았다는 점.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을 빼먹으면 하루 종일 기운이 없는 나로서 아침부터 먹고 시작했다.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는데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은 너무 많았다. 아담한 카페 겸 식당에 벌써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 오늘 아침은 여기서 못 먹겠다,,'하고 다시 나가려던 찰나에, 다행히도 구석 한 곳에 '나'를 위한 맞춤형 자리가 하나 있었다. 헝가리에서 마시고 반한 플랫화이트 커피와 채소가 먹고 싶어, 샐러드 들어가 있는 영어를 보자마자 하나 짚어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아침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연휴를 맞아 여행을 온듯한 그들, 평소 채식을 하는 사람들 같이 보인 분들, 놀러 나가기 전 잠시 가볍게 아침을 드시러 온 어머님들 등 모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하루를 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asmr로 삼아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세체니 온천으로 향했다. 헝가리에 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낯선 골목들이 익숙해졌고, 지도를 보지 않아도 역도 잘 찾아가고, 트램과 메트로 타기 등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척척 해내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신기하게도, 이 나라에서만 유독 이러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 나라 여행을 조금 하다 보면 낯설던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당연한 거겠지 싶었지만, 헝가리를 떠나 다음 여행지에서 여행을 할 때는 헝가리에서 느낀 그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헝가리와 진한 정을 붙여가고 있었다.
세체니 도착
메트로를 타고 세체니를 향해 몇 정거장 이동한 후, 내려서 나와보니 커다란 노란색 건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설마 세체니 온천인가?' 맞았다. 평소, 여행을 할 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아보고 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주거나 어디서 주워들은 이름만 잘 기억해 두었다가 지도에 검색하고 바로 찾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미리 여행을 한 후, 익숙해진 여행지를 여행하는 대신 이름만 친숙해진 다음에, 그곳에 도착해서 모든 경험을 새롭게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세체니 온천은 한국에서 '요시고 사진전'을 통해 제대로 몇 사진으로 접했고, 무작정 찾아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구에 들어가서 티켓을 끊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미쳤다.. 여기...'
연신 감탄하면서 내 라커함으로 들어왔는데, 앤틱한 사물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사실, 티켓을 끊을 때는 몰랐는데 전용 라커함까지 포함된 가격으로 구매를 했었나 보다. 의도치 않게, 안전하게 나의 짐을 잘 보관하고 얼른 옷을 갈아입은 후 걸음을 재촉하며 얼른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온천에 들어섰다. 매섭게 바람까지 불던 정말 추운 한겨울 12월 중순이었지만, 따뜻한 물속에 있으니 또 춥지는 않았다. 다만, 잠시 물밖에 나오는 순간은 얼어 죽겠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어찌 되었든 물속에서 스프링클러를 통해 나오는 곳에 발바닥을 대고 발찜질을 하며 멍 때리다 보니, 실감이 날 듯 안 났다. '내가 정말 세체니 온천에 와 있구나.' 보통, 각 나라에서 유명한 랜드마크로 꼽힌 곳은 늘 가면 식상하고, 여기서 본 게 저기서 본 거 같고, 저기서 봤던 게 여기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세체니 온천은 랜드마크로 꼽힐 만하다고는 생각이 들었고, 이 정도 되어야 정말 그 나라를 잘 드러내는 랜드마크라고 자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세체니 온천은 야외에 크게 2개의 풀이 있었고, 실내로 들어가면 공중목욕탕처럼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야외에 있는 온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50m 풀 야외 수영장' 시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아직까지도 세체니 온천을 떠올리면 '나의 첫 50m 풀 수영' 생각이 절대적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세체니 온천 내 수영장뿐만 아니라 여행지 갈 때마다 물이 있으면 헤엄칠 생각부터 했기에 수영 장비를 다 챙겨갔다. 특히, '수영모자'와 '물안경', 참고로 수모를 안 쓰고 들어온 몇 사람들도 있었는데 발 담그자마자 바로 안전요원에 의해 제지를 받는 모습을 꽤 보았다. 그래서인지, 수영장을 즐기는 사람은 나 포함 다섯 손가락에 꼽는 인원으로 그 넓은 수영장을 독차지했다. 수영장에서 대략 한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없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영을 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항상 두 발이 닿는 25m 풀에서 즐기던 동네 수영장에서 벗어나, 난생처음으로 발이 닿지 않는 50m 풀을 즐겨보니 차원이 달랐다. 운동도 두 배가 되고, 중간에 발이 닿지 않으니 쉴 수도 없고, 계속해서 수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럼 더 힘든 거 아니야..?'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세계의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수영을 하면서 헝가리에 사는 한 중년 남성분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위를 느낄 때쯤, 'Here we go' 외치면서 아저씨는 배영을, 나는 옆에서 평영을 하며 함께 물살을 거르기를 반복했다. 세체니 온천에서 수영을 하고 나와 다짐했다. '안 되겠다, 여기 수영장 또 알아봐야겠다.'
'세체니 온천', 앞서 말했듯이 헝가리 랜드마크로 꼽힐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50m 풀에서 처음으로 수영한 날', '외국인들과 처음으로 수영한 날'로 기억되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따끈하게 지지며 가만히 앉아있는 내 모습이 아니라.
"어떡해! 헝가리 진짜 내 스타일이야! 너존요(정말 좋아), 부다페스트"
헝가리식 라따뚜이
수영장에서 만난 아저씨께서 헝가리 음식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중 '헝가리안 라따뚜이'는 처음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 라따뚜이는 음식보다 영화 '라따뚜이'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곳에서 음식을 라따뚜이를 먹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바로 그 자리에서 구글링 하고 가까운 순으로 찾아 지도가 향하는 대로 따라갔다. 메뉴판에 라따뚜이 있는 것만 바라보고 갔던 지라, 식당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머리도 안 말린 채 무작정 들어갔던 내 모습이 약간 부끄러웠지만,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물놀이를 하고 먹어서 그런지, 진짜 라따뚜이가 맛있었는지 아니면 이 양자가 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헝가리에 와서 약간 입이 짧아졌었는데, 한 접시에 나온 고기 몇 덩어리와 감자, 야채들까지 싹싹 깨끗하게 먹은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헝가리 여행이 끝날 때쯤 다시 생각났다. 결국 또 찾아가서 똑같은 라따뚜이를 시켜 먹었는데, 그때 결론을 맺었다. '아, 여긴 라따뚜이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