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옮기며 엄청 힘들어했던 '에밀리'의 심정이 이해 갔던 하루
아직도 어린 내 생각
오전 10시부터 부랴부랴 정신없이 움직인 하루였다. 기존에 지내던 호스텔에서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헝가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외국인들과 함께 보낸 흥겨운 호스텔 생활이 지나고, 이제 조용히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이동하고자 했다. 내가 지내던 곳은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갑작스러운 흥겨운 일들도 많고,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정을 넘기는 일이 일상이 되는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연말이라서, 혼자 혹은 친구들이랑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중에 내 모습도 포함해야겠다. 어쨌든 이 좋은 공간에서 벗어나 프라이빗한 곳으로 가고자 한 이유는, '잠'이다. 밤귀가 정말 밝은 나로서, 공동체 생활에서는 '잠'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뭐, 열심히 여행하고 돌아오면 씻고 바로 잠드니까 상관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지내보니까, 나는 무조건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잠드는 사람이었다. 아쉬운 마음, 홀가분한 마음을 안고 혼자 다시 그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숙소로 나섰다.
처음으로 여행하면서 나의 개인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약간의 들뜸이 있었다. 호스트로부터 숙소 관련 안내와 지도를 받았을 때, '어쩜, 숙소 위치도 이렇게 잘 잡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위치가 'Deep Burger' 식당 옆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더 이상 정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과 함께 간단하게 'Thank you, see you soon'이라는 짤막한 답장을 하고 끝났다. 그리고 숙소를 이동해야 하는 아침까지도 지도를 켜보지 않고, 내가 걸어 다니면서 봤던 'deep burger' 식당으로 자신 있게 갔다.
기존 호스텔에서 불과 2블록만 건너가면 있는 식당이어서, 짐을 옮기는 시간과 노력이 적어졌다는 사실에 속으로 내심 뿌듯했었다. 왜냐하면 각 숙소 위치를 일일이 생각하면서 숙소를 찾은 게 아니라, 가성비에 맞게 보이는 대로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아싸'하는 마음으로 식당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내 눈에 보여야 하는 '20'출입구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21', '22', '23' 등 다른 숫자들만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하다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아니야 있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캐리어를 잠시 두고 건물의 왼쪽부터 차근차근 숫자를 세어가며 'deep burger'까지 걷기를 한 두어 번 반복했다. 근데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씨유쑨 메시지를 보내고 처음 보낸 나의 메시지, 'I came here, but i can't find 20 entry...'
그리고 왼쪽 사진을 그대로 보냈다. 그리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면서, 이리저리 건물을 탐색하고 있었는데 어떤 한 외국인이 나왔다. 딥버거 식당 옆 옆 입구에 호스텔이 하나 있긴 했다. 근데 그 호스텔은 암만 보아도 내가 알고 있던 이름과 외관이 달라서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기서 나온 외국인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호스텔 이름을 말하면서 '익스큐즈미,,, 혹시 여기 00 호스텔 맞아?' 알고 보니 그 사람도 놀러 온 여행객이었지만,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호스텔 내부까지 안내해주었다. 호스텔 입구를 보니, 확실히 여긴 내가 알던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고, 호스트의 답장을 기다리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돌아온 답, 'I don't know where are you know. Pls ask someone to help you.'
이때,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오르더니 '아, 바보.. 나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호스트가 처음에 보내준 주소를 확인해 보는 것'말이다. 여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딥버거 식당이 맞겠다는 확신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100% 맞다는 보장이 없었던 것이다. 근데 난 어리석게도 내 생각이 맞을 거라는 불확실한 근거와 함께 나의 판단을 곧이곧대로 따르고, 믿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스트가 보낸 주소와 현 나의 위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시, 침착하게 호스트가 보낸 주소를 구글 창에 입력을 하고 보니 훨씬 더 가야 했다. 예상치 못하게, 나의 여유로웠던 아침 시간이 증발해버린 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맞게 도착해보니, 정말 또 다른 'deep burger' 식당이 떡하니 있었다. 나는 당연히 'deep burger' 식당이 체인점이 아니라 한 곳인 줄 알았나 보다. 체인점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차근차근 호스트의 메시지를 처음으로 정독해 보면서 입구에서 문을 열어 보았는데, 마침내 내가 와야 할 곳이 맞다는 걸 증명해주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무거운 나무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섰을 때, 저절로 '와..' 하면서 신기해했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 왔으니까 한국의 아파트 구조와 다른 게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문 잠금장치이며, 아파트 구조며, 알록달록한 색깔 등 정말 새로웠다. 그리고 나의 집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어서 어딘가 모를 편안함과 행복함이 느껴졌다. 이 아파트가 몇십 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지 쉽게 감은 안 오지만, 달팽이관처럼 꼬불꼬불한 계단 구조를 보고 깨달았다. '이곳 틀림없이 오래된 곳일 거야.'
이제 올라가 볼까? 하며 십 킬로 그램 넘는 캐리어를 낑낑 끌고, 아니 거의 던지다시피 옮기다 보니 3층의 17호에 도착했다. 올라오면서 떠오른 유일한 생각은 '에밀리, 파리에 가다.' 이 시리즈를 본 사람은 아마 내가 말하는 내용을 바로 이해할 거다.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 에밀리가 프랑스에 이사를 갔는데 아래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꼬불꼬불한 계단을 혼자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내 방에서 편안하게 누워 에밀리를 바라봤을 때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근데 이젠 다르다. 정말 에밀리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힘들었다.
20분이면 찾아올 숙소를 거의 1시간 넘게 헤매어 도착한 귀한 숙소에 들어와서 우선 웰컴 커피 한 잔 내리며 마음에 안정을 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부랴부랴 다시 움직여 부다페스트 근교 '센텐드레'로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사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진들을 넘겨보았을 때 돼서야 이 에피소드를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이 사건을 잊고 흘러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차차 정리를 해보니, 나의 생각이 아직 많이 어리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도 한 번 확인해 보았으면 해결되었을 일, 호스트가 보낸 메시지를 꼼꼼히 정독했으면 되었을 일들을 '나의 생각이 옳다는 무의식'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증발된 경험을 했다. 이점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으로 대부분의 것을 해내었기에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때, '나의 기준'을 먼저 들여다보고 있다. 스스로 선택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지만, 이 상황처럼 많이 답답한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다. 앞으로 나의 기준을 조금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나의 어린 생각을 깨닫게 해 준 'Deep Burger' 고마워,, '캐시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