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골목의 매력
걷는 게 좋은 걸
여행이 끝나고 문득 내 걸음수가 궁금해져서 확인했더니, 평균 이만보 이상 걷고 있었다. 떠나기 전, 발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께서,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막상 여행지에 오니 다 잊어버리고 나의 들뜬 감정만 생각하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지역을 옮겨야 하거나,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계속 걸어 다녔다. 수년 동안 단련된 걷기 습관을 순간적으로 바꾸기는 무리가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두 다리를 생각하면서 자제해야지 싶으면서도, 막상 하루가 끝나 숙소에 도착해서 보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행복해 한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걸어야지'라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대중교통의 존재를 잊고, 무의식적으로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고 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움직이는 걸 좋아하다 보니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러한 나의 걷기 습관은 부다페스트 곳곳을 즐길 수 있는 것에 큰 한몫을 해 주었다.
여행하면서, 다녀와서 꼭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부다페스트 여행하면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거기엔 뭐가 있어?', '난 야경 말고는 별로 볼 게 없어서 재미없던데..'
부다페스트 여행을 하면서 정말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편안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 내용들이 엄청 쌓여 있을 줄 알았고,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나의 여행 영상들과 사진들, 중간중간 기록해 둔 메모장들을 열어보았는데, '어라..' 뭐가 유별나게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다에 들어가서 다이빙을 하며 상어를 만났다라던가, 남극에 가서 펭귄을 만났다거나, 사막에 가서 모래 미끄럼틀을 탔다는 등 뭐 이런 모험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여행을 처음으로 시작할 즈음의 나는 '해외여행'하면 환상적이고, 무언가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 같고 (물론 드라마틱한 일들이 수없이 생겨날 때도 있다.),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할 일들을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으로 연상했다. 꼭 무언가 '행위'를 해서 '여기 가서~~를 했고, 했고, 했고, 해서 재밌었어!'의 개념으로 여행을 대했다. 실제로, 여행지를 갈 때마다 액티비티를 1순위로 여겼다.
그러고 나서,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던 건 '아, 내가 한국에서 보내던 생활을 여행지에서 그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큰 행복을 얻을 수 있구나.'이다. 헝가리에서의 일주일을 반추해보니 이 결론이 맺어졌다.
이번 헝가리 여행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한국에서 보낸 생활처럼 내가 좋아하는 그릭 요거트와 커피로 아침을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영이나 스케이트토 타며 운동도 나름 꾸준히 하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보냈다. 참, 일 년에 술 먹는 날이 다섯 손가락에 꼽는데 일 년 치량의 술을 밤마다 마셨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한국에서와 별 다를 것 없는 루틴이었지만, 주위의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점과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도 한국이 아닌 '부다페스트'라는 점의 요소가 가미되었다. 약간의 요소만 바뀐 것뿐인데, 난 거기서 낯선 사람들과 공간으로부터 편안함을 얻고 행복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해서, 걷기의 매력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덕분이지 않았을까. '걷는 것에 재미를 붙이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난 또, 이번 헝가리 여행을 하면서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한 번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