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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Jun 21. 2022

스케이트 배우러 갔다가
남미 아미고가 생겼다.

세체니 아저씨를 시작으로 맺어진 행복의 연결 고리 이야기

Pick up the my son

세체니에서 같이 수영했던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너 여기까지 왔으면 근처에 있는 스케이트장 꼭 가봐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아저씨의 아들은 별일 없으면 매일 가서 스케이트를 타니까, '빨간색이었나?' 아무튼 고글을 쓴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서 친해지라고 이야기하셨다. 매일 스케이트를 탄다는 말에 놀라서, 대단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pick up the girl" 하기 위한 거라고 넌지시 장난을 던지셨다. 자연스레, 나에게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라는 등의 농담 속에서 '순간 갑자기 스케이트를 타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추천해 주시는데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 스케이트의 '스'자도 어색할 정도로 스케이트와 벽을 쌓은 지 십 년이 넘었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인라인 스케이트 배우다가 넘어지고 울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했던 기억만이. 그때부터 '나랑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는 아니다.'라고 마음을 굳게 다졌고, 시도해 보지 못했다. 우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볼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지만 세체니에서 나와 밥 먹으러 가는 길, 밥을 먹으면서, 숙소로 돌아가서 쉬는 내내 아저씨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외 스케이트장 개장한 지 얼마 안 됐어, 유명한 곳이야" 그리고 "pick up the my son"


보통 성격 같았으면 누가 '이거 한 번 해 봐~'추천해주면 주저 없이 바로 해보는 편이다. 누군가의 추천이 뜻밖의 평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취미로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정말 웬만하면 스케이트를 바로 배우러 가고 싶었고, 부다페스트에 유명한 야외 스케이트장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 근데 난 지금 혼자고.. 스케이트는 처음에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거기 갔다가 혼자 민폐 부리면 어떡해..' 반나절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까짓 껏 우선 부딪혀 보자!'하고 바로 지도를 켜고 아저씨가 알려주신 스케이트장을 검색했다. 가는 길에, 핑크색 옷을 입은 꼬마 아이들도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지 스키복 차림에 장비까지 아주 완벽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속으로 '그래, 꼬마들도 탄다. 포터야' 주문을 걸면서 꼬마들 뒤를 졸졸 따라가 도착해 보니 줄이 어마어마했다.


'이렇게 다들 스케이트에 진심이라고?' 아직 스케이트장 내부를 보지 못한 상황이라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에 얌전히 가서 뒤에 섰다. 줄을 서면서도, '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점점 강하게 들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화려한 스케이트를 양손에 한 짝씩 하나씩 들고 와 주변 친구들, 가족들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약간 외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념무상하며 줄을 서고 있었는데 안내 방송이 거듭 울렸다. 비록 헝가리어였지만 안내원의 어조와 어투로 봤을 때, 대충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폐장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점을 참고해라라는 내용 같았다. 뒤에 있는 분들에게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물어보니 맞다는 확실한 답을 들었고, 결정했다. 


'포터야, 우선 다음에 다시 와서 천천히 배워보자.' 하고 뒤돌아섰다. 


큰 결심하고 어찌저찌해서 도착한 버이더후녀드성 근처 스케이트장


빙판길에 홀로 비틀비틀 서있는 모습을 수 십 번 넘게,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는데 절레절레였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에'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이 마음을 따르기로 하고 지나가다가 봤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들리기로 했다. 멀리서 봐도, 번쩍번쩍한 마켓으로 향하는 길에 한 육교를 건너게 되었다. 이 육교에서 바라보는 스케이트 광경에 진심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그래진 내 동공과 콧구멍과 입을 다무는데 시간이 꽤 걸렸으리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로하고, 난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평일 평범한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스케이트에 진심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동시에, '오늘은 도전을 포기하길 잘했다.'라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왜냐하면 '나 같은 초보자'는 정말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출출한 배를 때우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찰나에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두 여자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저분들 사진을 같이 찍어드리고, 나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스케이트에 다들 진심이다.
에콰도르 친구들이 찍어준 포터 사진
헝가리에서 사귄 첫 친구들

아주 잠깐 서로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주는 그 찰나였지만, 서로에게 느껴지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에콰도르 친구들에게도 나의 에너지가 느껴졌는지, 그렇게 우리는 바로 amigo('친구')가 되었다. 분명히 나는 여기서 내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다가갔는데, 얼떨결에 대화를 나누다가 '네가 부다페스트에 있는 동안 시간 되면 같이 만나자, 우리가 부다페스트 구경시켜 줄게!'라고 말을 건네주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약간 외로움을 느꼈는데 바로 그 외로움을 가시어주는 남미 친구들을 사귀었다. 갑작스러운 인연에 얼떨떨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 모든 인연은 세체니 온천에서 만난 아저씨가 이어준 게 아닐까 싶었다. 비록, 스케이트장에서 아저씨 아들은 못 만났지만, 스케이트를 직접 타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날 밤 남미 친구들을 사귀어 번개 약속을 잡았다는 게 웬 말인가! 아저씨의 추천으로 스케이트장에 용기를 내고 와서 줄을 섰다는 것, 도중에 포기하고 다시 뒤돌아섰다는 것, 육교에서 낯선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진 찍어달라고 했던 것들이 다 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단 하나도 후회로 남은 선택이 없었다. 


(왼) 첫만남 (오) 번개 약속으로 재회

짧은 찰나에 일어난 많은 일들을 잠시 뒤로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그 번쩍번쩍한 마켓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부다페스트 중심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던 마켓이라 이곳이 더 좋았다. 핫와인과 굴뚝 빵 코코넛 맛 하나씩 사서, 벤치 말고 스케이트장이 한눈에 보이는 잔디밭에 털썩 쪼그려 앉았다. 헝가리 여행을 반추했을 때, 유명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멋있는 건축물을 보았다거나, 오케스트라(이것도 물론 엄청난 경험이었다.) 공연을 봤다거나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 몇 개 가지고 잔디밭에 앉아 멍 때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들이 기억에 더욱 잘 남는다.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히, 모두가 평범한 평일 오후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스케이틀 타며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보기 좋았고, 아름다웠다. '핫와인에 취했던 걸까..?'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여기, 버이더후녀드 성 근처 마켓이 마음에 든다.
행복했던 밤, 핫와인에 취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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