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올 법한 트램 안에서, 첫날
다시 여행의 원점으로
환경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여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일들을 다시 처리해야 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 짐을 푸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다시 여행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언제나 새롭다. 들뜨는 마음 잠시 집어넣고, 우선 이전에 쓰던 유심이 이 나라에서는 연결이 안 돼서 유심부터 바꿔야 하고, 머물고 있는 이곳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디가 가볼 만한 지, 제일 중요한 마트는 어디 있는지 등 확인해야 한다. 다소 번거롭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 절차들이 나는 좋더라. 그리고 되도록이면 최대한 대중교통 없이 걸어 다니려고 했다. 걷기를 좋아해서도 있지만 그보다는 먼저, 세르비아의 첫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에 트램을 잘 타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의 첫인상, 트램으로부터 시작된다.
'토마트와 친구들'에 나오는 트램
첫날 버스를 내려 도로에 나왔을 때, 몇 안 되는 누런 조명 아래에서 초록색, 빨간색 트램들이 철컹철컹 소리를 내면서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때 깨달았다. '아, 나라마다 트램의 모습이 다르구나.' 나의 첫 트램은 부다페스트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노란색 트램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트램에 대한 이미지가 부다페스트의 트램으로 자리 잡았던 거다. 하지만 세르비아 트램을 봤을 때는 조금 신선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마치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기차의 일부분이 분해되어 움직이는 거 같았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정신없음' 그 자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항상 정신없는 트램이 아니라, '밤'이라는 요소가 나의 첫 트램 경험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안 그랬으면 평생 세르비아 트램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을 테니까.
12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도 후텁지근한 날씨와 낯선 공기 속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7번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플릭스 버스에서 정류장을 놓치지 않고 올바르게 잘 내렸고, 짐도 무사히 내 곁에 있고, 트램 정거장까지 잘 찾아와서 한시름 놓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교통비'였다. 밤중이라 '디나르'로 환전을 하지 못했다. 한국의 교통 시스템을 생각하며, 현금 대신 카드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앞서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카드를 대체 어디다 찍는 거야?', '돈은 어디서 내는 거지?' 7번이 오기 전까지 몇 대의 트램이 오고 지나갔는데도 도저히 교통비를 계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속으로 얼마나 말을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체념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옆에 한 청년이 있어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혹시 내가 디나르가 없어서 그러는데 카드로 교통비 내도 돼?"
"아! 저녁이라서 돈 낼 필요 없어, 돈 없어도 괜찮아, 걱정 마."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트램을 타는데 돈을 안 낸다고? 대체 왜?'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저녁이라서 검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게 맞는 건가 하는 반신반의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7번 트램에 잘 올라탔다. 그렇게 '나의 첫 무임승차'를 세르비아에서 하게 되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찌어찌해서 트램 안에 무사히 몸을 싣긴 했는데 깜짝 놀랐다. 바로 전 여행지가 부다페스트였기에 계속 비교가 되었던 건 어쩔 수 없던 노릇이었다. 일단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마스크 의무 착용이 매우 익숙했던 나에게 단 한 명도 쓰지 않고 다닥다닥 모여있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연말이라서 한창 다시 대유행이 돌고 있다는 기사들이 많았던 터라 대부분의 유럽이 락다운을 하느냐, 마느냐부터 시작해 각 나라별 방역 수칙도 매우 변동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이 나라도 방역 수칙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대중교통 안에서는 마스크 쓰라고 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 이전의 일상생활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철두철미하게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한국과 다른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까, 약간 멍했다. 멍한 상태에서 자칫하면 정신을 놓고, 트램 종착지까지 갈 수도 있을 뻔했던 순간이 쉼도 주지 않은 채 바로 찾아왔다.
내가 탄 칸에 대부분이 대학생처럼 보였는데, 대학교에서 교수님이랑 트램에서 토론 수업을 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저 사람은 화가 났나?', '싸우는 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띤 대화 소리, 끊이지 않는 소그룹 토론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평화롭게 여행하고 돌아와서 새 출발하는 떨리는 심정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혼이 쏙 빠졌다.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지만 약간 언어가 거칠다고 느낀 건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었을 뿐, 그들에게는 어떠한 불쾌한 감정도 없는 평범한 일상적인 대화였다. 한 번은 실례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중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다가, 잠시 통화를 하고 마친 친구에게 물어봤다. "혹시 친구랑 싸운 거 아니지?" 그러자 친구가 엄청 웃으면서 "싸운 것처럼 들려? 전혀 아니야, 그냥 잠시 대학교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어."라고 하며 엄청 신기해했다. 나도 신기했다. 이때부터 점점 세르비아어의 대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들은 싸우는 게 아니야, 졸지 마.'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첫날부터, 언어가 주는 느낌이 다양하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