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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tor에서 friend로

What a adorable day, with Petar

by 김혜미
We are not no longer teacher and student, we are friends

단 25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처음 보는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 면대면이 아닌 '온라인이라는 상황 가정 하에'라는 조건이 더 붙어야 완벽한 물음이 될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록 대화의 형태가 화상 통화로 변했을 지라도 모니터 속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그 사람의 성격, 표정, 분위기는 여전하며, 시간과 관계없이 짧은 시간 안에 그 모습들이 묻어져 나온다. 운이 좋게도, 나의 첫 튜터를 아주 잘 만났고, 이후로 영어 회화가 재밌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튜터인 Petar를 만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우리의 대화를 주기적으로 이어나갔다. Petar와 대화를 마치고, 모니터를 닫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행복'이었다. 하루는 25분, 어느 날은 더 오랜 시간 대화하고 싶어서 시간을 연장해 50분 동안 피터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1년 넘게 인연을 지속하며 확신한 것은 '피터는 정말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 감정이 단순히 반복되는 칭찬으로 인해 생기는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날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아, 피터는 진짜 좋은 사람' 피터를 만나고 나서, 그가 살고 있는 세르비아, 피터의 긍정적인 성격에 영향을 준 주변의 환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보다도, 그로 인해서 행복과 따뜻함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매번 회화 시간이 끝나면 그날 배운 영어 일지를 작성하는데, 피터와 대화할 때면 유독 영어보다는 피터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마무리는 '얼른 유럽에서 피터를 만나고 싶다.'의 식의 문장을 여러 번 바꿔서 작성했다. 문득문득 드는 비현실적인 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뿌리치며, 한없이 나 홀로 꿈을 꾸고 있었다. '피터와 만나서 여행하는 꿈'


그리고 진짜 이뤘다. 이제 우린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친구가 되었다.


제법 추워진 작년 11월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트북을 켜고 피터와 화면 속으로 대화하는 날이었다. 연인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하듯 심장이 두근거렸고, 과연 피터의 반응은 어떨지 아주 혼자 난리였다. 몇 번이고 '피터! 내가 놀라운 소식을 하나 알려줄게, 나 이번에 세르비아 가려고!'를 시뮬레이션했는지 모르겠다. 떠나기 한 달 도 안 남은 상태였기에 그에게도 무척 갑작스러웠을 거다. 한 편으로는 피터가 벌써 일정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불길한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도 "피터! 나 이번에 유럽 여행 가려고, 세르비아도 들리려고 하는데 만날 수 있어?"의 대답은 기대하던 것 상상 이상의 일이 펼쳐졌다. 피터의 성향이 '파워 J'였던 걸까, 나와 함께하는 날을 하루빨리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싶었던 걸까. 난 후자라고 믿으면서 한 20일 남겼을까, 그때부터 함께 초고속으로 언제 어디서 만날 지, 뭘 보고 싶은 지 등 따로 화상 통화를 더 하면서 우리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 만나는구나.' 역시 사람은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 걸까, 꿈을 꾸다 보면 어느새 이루고 있으니까.


우연히도 우리가 만난 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23년 동안 살아오면서 보낸 크리스마스 중 제일이었다. 이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 같다. 피터와 다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면 모를까. 피터와 만나는 아침 10시, 처음 느껴보는 떨림의 감정이었다. 소개팅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은 없지만 마치 소개팅을 하러 나가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고, 입꼬리가 실룩실룩 움직이는 탓에 저절로 광대는 승천해서 눈이 작아지고 있었다. '아, 너무 좋아하는 거 티 내면 안 되는데.' 나중에 우리의 사진을 보니까 이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차피 올라갈 내 입꼬리와 광대였으니깐.


드디어 우린 '타슈마이단 공원'의 한 큰 성당 앞에서 마주하게 되었고, 가벼운 포옹과 함께 첫 대면 인사를 나누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날씨와 분위기, 피터의 억양과 나의 리액션, 우리의 대화가 생생히 기억난다. 다행이다, 그 순간을 그저 스쳐 보내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온감각을 총동원해 그 순간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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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adroable Christma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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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올라가니, 내 광대와 입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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