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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

with srdjan

by 김혜미
N극과 S극 같았던 Srdjan과 내가, 세르비아에서

세르비아에서 만나고 싶었던 친구가 또 있었다. Srdjan도 온라인 튜터로 만난 사이였다. S는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늘 알고 지내던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토록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갈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항상 타인이 먼저, 말과 행동에 스윗함이 흐르는 S와 스윗함은 모르겠고 단도직입적이며 늘 솔직한 발화에, 타인보다는 본인이 우선인 나의 조합이다. 또, 뼛속부터 에너자이저인 나와 파티에 가는 것 이외에는 활동적인 것과 거리가 먼 S이다. 마치, N극과 S극처럼 붙여질 수 없는 사이였던 우리가 튜터링의 인연 덕분에 그 척력을 이겨내고 맺어졌다랄까. 우린 하루 끝 무렵 온라인으로 만나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눈다. 그때마다, 취미나 생각 등이 정반대라서 서로를 신기해하는 게 일상이었다. 예를 들면, S는 방금 일어났거나 게임을 했다면 난 늘 산이나 수영을 다녀왔거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점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스몰톡을 주고받던 우리가, 나의 갑작스러운 세르비아 여행 선포로 인해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Srdjan의 스윗함은 역시 피를 타고 온 거였어!

숙소 앞까지 날 데리러 온 S의 스윗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응..? 날 데리러 온다고..? 왜?' 늘 약속이 있으면 약속 장소에서 만나는 게 일상이었던 터라,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와 준다는 게 그저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무튼, 그날 하루를 통틀어서 내린 결론은 '이 친구는 뼛속부터 스윗함이 묻어져 있다.'였다. 그리고 그 원천은 바로 S의 알콩달콩한 부모님이셨다. 역시, 피는 정직한 것인가. S는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잠깐 로맨틱과 모험을 넘나드는 영화 한 편을 빨리 감기로 보고 온 듯 했다. 부모님께서는 둘 다 여행을 좋아하시는데 비행기를 무서워하셔서, 강아지를 놓고 갈 수 없어서, 내린 결론은 '차로 여행하기'였다고 한다. 그것도 단기간, 일회적 여행이 아닌 매년, 자주, 시간이 날 때마다 다니고 있는 중이시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시는 아버님, 사진 찍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님(실제로, 어머님의 사진 실력이 어마어마하다.), 부모님과 찰떡궁합인 강아지까지. 이들이 차를 타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일화가 머릿속에 마구마구 그려지는데, 상상만 해도 너무 멋있었다. 한 여행지에서 부모님께서 같이 찍은 사진을 봤는데, 둘이 너무 달콤해 보이셨다. 잉꼬부부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두 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수긍했다. '이 친구는 정말 사랑꾼의 피가 흐르는 친구' 지금도 SNS를 통해 가끔씩 올라오는 S의 어머님 여행 사진을 볼 때마다, 늘 감탄하며 하트를 누른다. 어머님의 사랑이 담긴 사진들과 러브 스토리, 사랑 속에서 태어난 스윗한 S의 가족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거 같다.


이렇게, 가족, 학교, 친구, 여행, 인생, 연애 등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루가 흘렀다. 물론, S가 데리고 가 준 로컬 음식점, 수잔이 대학생 때 즐겨 다니던 지하 카페, 피터와 최근에 다녀갔던 공원 등 이곳저곳 S의 시선에서 베오그라드를 한 번 더 새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S와 나눈 대화의 알맹이들이었다. 우리는 걸어 다니면서 계속 쫑알쫑알거렸고, 밥을 먹으면서는 물론이었고, 카페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수다의 장이 열렸다랄까. 그렇게 사랑꾼 S와 스윗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 한국에 오면 내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곳 많이 데려가 주겠다며, 꼭 놀라오라는 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다시 나의 숙소 앞까지 데려다준 S, '그래! 오늘 하루는 나 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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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빵은 잘 모르겠고, 스프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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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가 대학생 때 자주 오던 카페


이후 남은 여행들을 마치고 나서 한국에 돌아온 후, 한 2~3달 흘렀을까, 짧으면서도 긴 그 시간 동안 S의 관심사가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S에게 활동적인 것=술, 파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거다. SNS에 종종 올라오는 사진들에 깜짝깜짝 놀랐다. 'S이라고??' S의 SNS를 보면 볼수록 얼른 S과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듣고 싶어 귀가 간질간질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한 편으로 놀랐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행의 세계에 들어와 재미를 느끼고 있는 S의 모습에 기뻤다. 드디어, 오랜만에 S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의 입은 쉬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Srdjan! 무슨 일이야!? 요즘 여행 다니고 장난 아니던데!! 얼른 여행 이야기도 들려주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봐!!,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추천해 줄 곳 있어?" S은 예상했다는 듯, 날 진정시키고 하나씩 대답을 해주었다. 그중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


"있잖아, 사실 난 너를 만나고 나서 많이 변했어. 네가 나한테 동기부여를 줬어.

우리 만났을 때, 너와 대화를 나눈 뒤로 이렇게 지금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랄까, 정말 정말 고마워."

"Thank you so much, hyemi"


S의 솔직한 말을 들은 직후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얼렁뚱땅 넘겼던 거 같다. 그러나 S와 대화를 끝내고, 노트북을 덮고 잠시 다시 그 말을 되새겨 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삶의 일부에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어쩌면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구나. 긍정적인 영향이라서 더 좋았다. 특히, 내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변화해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세계에 같이 들어와서 영광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큰 깨달음을 전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 Srd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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