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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낯선 타국에서 뽈뽈 잘도 다녀

by 김혜미
첫 수동식 엘리베이터

하루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서워했던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아주 능숙하게 열고 닫고, 작동시키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랐다. '잠시만, 나 분명히 이거 무서워서 캐리어 끌고 3층을 오르려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마주쳤다.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 속에서 나오는 그 엘리베이터가 실제로 지금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안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한 여행 유튜버의 영상 속에서 나온 수동식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보고, 두 눈을 의심하며 '이게 있다고?' 하며 놀랐던 나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엘리베이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왔다 갔다 해주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이번엔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숙소의 엘리베이터가 수동식이었던 터라, 타는 법을 배우는 건 필수적이었다. 처음, 큰 대문의 도어록을 열고 들어갔을 때 다행히도 호스트가 마중을 나온 덕분에 (사실, 도어록 문이 안 열려서 호출을 눌렀다.) 호스트의 이끌림으로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거의 자동식으로 탈 수 있었다. 그 작은 사각형 안에 큰 캐리어와 나, 단둘이서 있었던 시간은 단 몇 초였을 테지만 심장이 쫄깃쫄깃했다. '이거 안전한 거 맞겠지? 중간에 멈추거나 그러진 않겠지?', '내릴 때 문은 잘 열리려나?' 그 짧은 시간에 별 걱정을 다 하다 보니, 안전하게 도착해 있었고, 내릴 때도 문을 열어주었다. 수동식인데 자동식으로 탄 기분이랄까. '내일부터는 혼자 잘 타보자.', '아, 그냥 계단을 이용할까?'


거울에 비친 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전 일찍부터 베오그라드 도심에서 벗어나, 노비사드(Novi-Sad)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울리는 요란한 악기들의 버스킹, 연말을 제대로 맞이하느라 북적거리는 거리였는데 아침이 밝았다는 것만으로, 베오그라드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래서 오전 일찍 움직이는 걸 더 좋아한다. 특히, 그 나라의 수도에서는 모든 여행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수도를 여행할 때면 아침 일찍 부지런히 일어나는 새나라 어린이 여행자가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새나라 여행자로서 조용한 빗소리와 함께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연히, 내 모습이 또렷하게 비치는 한 벽면의 거울을 발견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울인데, 그날따라 유독 토닥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세르비아에 있는 내가. 여행을 한다는 이유 만으로 한국에서 보다 예쁜 옷, 잘 안 입던 옷을 입는 것에서 벗어나 내게 맞는 옷을 입으며 여행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여행을 하면 인생 사진을 위해서, 예쁜 풍경 앞에서 차려진 나의 예쁜 모습을 담는 거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모습은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 꾸며진 나임을 깨달았다. 편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연스레, 평소 편하게 입고 지내던 후드티 한 장, 언제든 액티비티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된 기모 레깅스, 체온 유지에 뛰어난 두꺼운 패딩 하나 걸치고 다니게 되었다. 특히, 세르비아에서는 더 편하게 다녀서였을까, 그래서인지 세르비아의 하루하루를 금방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에 낯설었던 수동 엘리베이터, 그들의 언어, 사람이 우선인 건지 차가 우선인지 모르겠는 교통질서 등 마저도 나의 삶의 일부에 들어와 있었다. 와 본 적도 없는 저 멀리 있던 나라, 세르비아에서 꽤나 빨리 정을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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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버스 터미널, 'to go novisad'

구글이 가르쳐주는대로 걷다 보니 버스터미널에 잘 도착했다. 공항을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큰 버스터미널을 생각하고 있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아담한 시외 버스터미널의 향기를 뿜고 있어서 잠시 동네에 온 듯했다. 현지에서 큰 이동을 할 때는 보통 플릭스 버스나 기차를 이용했던 터라, 로컬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터미널 이용은 또 새로웠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플랫폼이 눈에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 건지, 입구에서는 왜 나를 막는 건지(티켓비뿐 아니라 따로 개찰구 들어가는 비용을 내야 했다.), 시스템을 알지 못해서 답답해 했지만 금세 적응하고, 하나씩 배워나갔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베오그라드 첫 시외 터미널 경험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커피 하나 사들고 들어가는 여유를 잊지 않았다. 무사히 노비사드로 향하는 버스 번호가 적힌 플랫폼 앞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기다리다가, 안전하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 여기 언제 와봤다고 이렇게 하나씩 다 척척 해나가는 거야?' 마치 동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충청도를 다녀오는 것 같았다랄까, 굉장히 이질감 없는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할 때, 과거의 여행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옛날의 나였으면 이렇게 못 했겠지?'하며 과거의 나를 계속 들추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들로 가득찼다. '과거엔 그렇게 여행했지, 그때는 내가 혼자 다닐 엄두도 못했지.'하면서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대견해 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과거와 지금의 나는 다른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반드시 그때의 행동대로 할 이유도, 꼭 성장해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과거에 비해 지금 잘 해내고 있다고 우쭐해 하기 보다는, 그냥 지금 잘 해내고 있다는 거에만 의미를 두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에 집중하며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라고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순간만큼은 지금의 나를 칭찬하며, 새로운 지역 Novi-Sad로 이동했다.


KakaoTalk_20220730_082442030.jpg to go Novi 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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