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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경찰차 탄 거 아니지?

세르비아 경찰들과 한밤중 드라이브

by 김혜미
지금 나는 노비사드에서 베오그라드로 넘어가는 중이다.
두 경찰과 함께 아주 흥겹게 달리고 있다.
Bla bla car, 첫 카풀

이틀이면 충분할 거라고 단단히 착각했던 노비사드 여행을 잠시 멈추고, 다시 북적거리는 베오그라드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떠나는 날, 친구가 흥미로운 제안을 해주었다. "Bla bla car(카풀 서비스 어플)라는 게 있는데, 그걸로 가면 사람들이랑 셰어 해서 가니까 돈도 적게 들고 빨리 갈 수 있어! 이거 예약해줄까?" 이 어플은 현지인들이 이동할 때 많이 사용한다. 누군가가 차를 끌고 잠시 근교 여행을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을 태움으로써 운전자도 돈을 조금 벌고, 다른 탑승자들은 돈도 아끼고, 여러모로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특히, 나 같은 이방인은 돈도 아낄 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벌 수 있었다. 듣기만 해도 흥미로웠던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 예약해주면 고마워!"

한 번도 카풀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내 머릿속에는 카풀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는데 '웬걸!' 아주 건장한 두 남자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카풀이다 보니 낯선이와 동승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난 그 순간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맞다, 카풀은 정말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랑 가는 거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살짝 경직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떠나기 전, 낯선 사람 조심하라며, 사람 조심 또 사람 조심이라고 몇 번이나 외쳤던 친구들의 신신당부가 스쳤다. 아무튼, 도착하자마자 꼭 연락 남기라는 친구의 당부와 함께 마지막 포옹을 나누고, 그들과 한 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서로 어색할 뿐 아니라, 짤막한 기본적인 영어만 가능하다고 하셔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결국 차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가끔 그들이 세르비아어로 나누는 몇 대화만이 오고 갈 뿐이었다. 몇 분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보통은 차에서 각자 할 일 하면서 가기 때문에, 넌 차에서 푹 쉬면서 갈 수 있을 거야." 친구의 말처럼 경직된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조용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상태로 1시간 이상은 가야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졸려도 절대 눈은 붙이지 말아야지라는 스스로의 약속과 함께 동공이 흐릿해지는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뒤에 앉아 멍하니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삼십여분 지났을까, 그때 어디서 왔냐는 등의 기본적인 몇 질문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으나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재빠르게 정적의 순간이 돌아왔다. 그저 계속해서 어두운 도로를 달릴 뿐이었다. 근데 밤이라서 어두운 건 그렇다 치고 이 도로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자동차들이 켠 라이트뿐이었다. 아마 제주도에서 천백고지 올라가는 길, 시골의 밤에 가로등 없는 도로에서 운전해 본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질 거다. 표지판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도로 차선이 보이지 않았다. 나만 이렇게 겁에 질려있는 거였을까, 결국 내가 먼저 정적을 깼다. "아이 띵크,,, 디스 스트륏 이즈 쏘 달크(내가 생각하기에,, 여기 너무 어두운 거 같아,,)" 혹시나 길을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정도로 길이 어두워도 되는 건지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들어 무서운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처음으로 웃음을 보이면서 "아~여기 산이야! 산이라서 아무것도 없어."


순간 머쓱해져서 그렇구나 하며 헤헤 멋쩍게 웃으며 나의 겁이 볼품없이 들통나 버렸다. 겁쟁이 덕분에 차 안의 공기도 약간은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경직되었던 나의 입도 풀리기 시작하며 운전대를 잡은 그가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앞 차를 추월해 이동할 때마다, 겁을 억누르지 않고 "어.. 어..!! 비케어풀!!!!"을 연신 외치며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이루어졌다. 자기들을 믿어도 된다며, 베스트 드라이버니까 걱정 말라고, 둘 다 경찰이니까 넌 안전하다며 나의 침착함을 위해 다들 힘써주었다. '응..? 경찰이라고..?' 갖고 다니던 경찰증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스윽 가셨다. '후... 빨리 좀 말해주지!' 만나도 어떻게 경찰을 만나는 건지 참 신기했다. 그들은 잠시 바람 쐬러 노비사드로 여행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던 거고, 가는 김에 사람을 태워주면 돈도 버니까 같이 갈 사람을 올렸는데 자기네들도 저 먼 한국에서 온 여행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다. 이제야 서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한 후에 뒤늦게 다시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 우리만의 파티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들도 내가 궁금했었는지, 침묵의 게임이 끝나자마자 혼자 여행하는 거 무섭지 않냐며, 연애는 몇 번 해봤냐며, 진정한 사랑을 한 적이 있냐, 세르비아 역사를 아느냐, 한국에서 경찰은 어떻냐 등 다양한 질문이 순식간에 들어왔다. 최대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을 골라 짤막한 문장형으로 조합해서 답을 하느라 진을 조금 뺐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관계, 세르비아에서의 경찰의 대우, 그들의 연애 이야기와 서로 대부 관계였던 진한 친구 사이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흘렀던 정적의 순간보다 훨씬, 백배 천배 나았다. '아까는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이제는 카트라이더 급으로 운전해도 비케어풀을 외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는 여유도 제법 생기고, 경찰들과의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다만 이차선 도로에서 이리로 오고 있는 차가 뻔히 보이는데도 잠시 옆 도로로 넘어가 기어코 앞의 차를 추월하는 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더 띄우기 위해선 역시 전 세계 공통적으로 통하는 문화, 바로'노래'가 아닐까. 친구 아들의 대부인 경찰 한 명(이름이 도저히 기억나질 않는다.)이 세르비아의 희한한 웃긴 노래들만 골라서 틀어주었고, 영상 속 가수를 따라 하며 웃긴 표정으로 춤도 따라 해 준 덕분에 우리 셋은 무장해제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캐롤도 들으며 연말 분위기도 내보기도, 발라드가 등장으로 옛 연인 이야기도 나누기고, 강남스타일 합창까지 즐겼다. 마지막으로 비트가 아주 쪼개어질 대로 쪼개어진 힙한 노래를 가장 큰 볼륨으로 들으면서 우리의 한밤중 드라이브가 절정을 찍고 있었다. 비록 몇 시간 전에 파티 초대를 내 눈앞에서 떠나보냈지만 순식간에 아쉬움이 가시고 있었다. '이미 난 지금 파티를 즐기고 있는 걸!'


그렇게 그날은 베오그라드에서 고위직 사람들의 보디가드를 맡고 있던 그 경찰은 끝까지 날 안전하게 데려다주며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도, 숙소에 들어와서 씻다가도, 멍하니 티비 화면을 응시하다가도 좀 전의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었다. 타인을 첫인상으로만 마음대로 판단하고, 별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던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참 감사한 하루였다. '블라블라카' 덕분에 맺어진 세르비아 경찰 두 명과 즐긴 달리는 차에서 벌어진 파티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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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베오그라드도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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