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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의 시간, 3국의 해피뉴이어

우크라이나에서 1월 1일을 맞이하기 전

by 김혜미
1월 1일을 맞이하기 전, 우리의 부엌

M네는 1월 1일을 맞이하기 전날 이른 저녁 즈음부터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해서 새해가 펼쳐지기 대략 한 시간 전 정도에 완성된 음식들을 한 곳에 나른다. 정리를 다하고 자리에 앉아보니 어느새 자정이 되기까지 삼십여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세팅된 네모난 테이블 위에는 여러 종류의 샐러드와 마마표 감자 퓨레, 직접 구운 치킨, 설탕에 절인 달달한 파프리카, 나를 위한 김치, 양주와 샴페인 등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이 모든 준비는 마마의 철저한 계획과 노련한 실력으로부터 펼쳐졌고, 그 가운데 나와 M의 작은 지분이 들어가서 굉장히 뿌듯한 한 상이었다.


저녁에 깜빡 잠이 들어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엌에 들어섰을 때, 어머님께선 슬슬 재료를 뚝딱뚝딱 손질하고 게셨다. 비록 나의 요리 실력은 전날 케이크를 만들면서 다 들통나 버렸지만 샐러드 만들기라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마마의 신호에 따라 마요네즈를 듬뿍 담아 버무린 마요네즈 햄 샐러드와 올리브와 오일 및 치즈가 가득한 그리스 샐러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체불명 샐러드까지 모두 무사히 마쳤다. 또,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마마의 엄청난 큰 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이 장을 볼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만 아낌없이 소스와 재료를 넣어 섞으시는 마마의 큰손에 우리 할머님보다 더 한 분이 계심에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부르며 맛이 어떤지 계속해서 의견을 물어보시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내가 조금씩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소스 넣는 것, 재료들을 섞어보는 것, 예쁜 접시에 옮겨 담아보는 것 등의 역할을 주시며 옆에서 계속해서 도와주셨다. 저번에 케이크를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내가 거들지 않아야 빨리 수월하게 끝낼 수 있던 일들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나의 경험을 위해주셨다. 덕분에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함께 요리했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그리고 뭐든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이렇게 사람의 기억에 큰 작용을 할 수 있구나를 몸소 배웠다.


어느새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상이 다섯 식구를 위한 상이 가득 찼다. 가득 찬 상 앞에 각자 자리를 맡고 앉아 새해맞이를 위한 생방송을 틀어놓고, 자정이 넘기를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5분 전쯤 자리에 모두 일어나길래 자연스레 일어났고, 뒤이어 잔을 든 채 묵념이 이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한국에서 이 시간에 밥을 먹은 적이 있나?', '한국이었다면 종소리 듣고 바로 잠들었겠지?', '근데 우린 지금 밥을 먹으면 밤은 새우는 걸까?' 등 한국의 우리 집과 다른 문화에 새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이 다양한 생각을 순식간에 증발시켜준 마마의 경쾌한 방귀소리에 모두가 모른 채 하려고 숨죽여 멘탈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못 참고 터져버린 나의 웃음 때문에 모두가 묵념을 잠시 잊고 웃다 보니 어느새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다시금 방귀소리에서 헤어 나와 정신과 잔을 부여잡고, 십 초를 세고 있었다. '10,9,8,7...... 3,2,1' 그렇게 우리는 놓쳐버렸지만 모두의 마음속으로 함께한 한국의 새해 시간, 러시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3국의 시간에 맞추어 3국의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잔을 들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뉴벤부라꼬~!"


저렇게 큰 샐러드를 3그릇 만들었다.
M셰프님과 보조셰프들의 작품
어머님의 방귀 소리와 함께 뉴벤부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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