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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불꽃놀이, 우리만의 사진관

"뉴벤 부라꼬(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김혜미
냐 니자부또 에또 모멘또(이 순간을 못 잊을 거야)

'3..2..1'의 카운트가 끝나자, 티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새해 인사말과 우리의 훈훈한 덕담이 오고 갔다. 파파는 이 순간을 제일 기다렸다는 듯, 자정이 되기 전 마지막 1초가 지나자마자 준비해 둔 샴페인을 펑하고 터뜨렸고, 곧바로 나의 잔에 담아주셨다. 뒤이어, 할머님과 마마의 잔에 한 잔씩 가득 부어주셨고, 파파는 다른 양주를 조심스럽게 따르셨다. 모두의 잔이 준비가 되자,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다 함께 동시에 잔을 하늘 위로 들며 외쳤다. "뉴벤 부라꼬(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잔을 한 잔 비우고 난 후, 저녁부터 만들어 둔 음식들을 하나씩 각자의 취향대로 그릇에 옮겨 담아 먹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마치 가정 행사를 하나 연 듯 식사가 끝나고, M과 나는 새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풍선의 힘을 빌려 허겁지겁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새해를 맞이할 거라는 점을 미리 계획해 두었기에 한국에서 풍선들을 준비해 갔는데, 그러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선을 벽에 다 붙이고 보니, 2022년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제법 새해를 환영하는 파티 느낌이 물씬 났다. 이제 마마와 파파에게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준비를 하고 있는 찰나에 도리어 내가 놀라는 순간이 찾아왔다. 갑자기 밖에서 펑펑하는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홀로 다소 심각해져서 밖을 나갔는데 옹기종기 가족들이 모여 창문 밖을 내다보며, 내 이름을 부르며 어서 와서 불꽃놀이를 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멍하니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매년 새해마다 불꽃놀이를 크게 진행하는 동네였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에 감탄하며 다 함께 창가 한 곳에서 같은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코로나가 등장하고 나서, 불꽃축제를 안 가본 지 2년 즈음 넘은 듯했는데 이렇게 외국의 한 가정집에서 여유롭게 현지인들과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잠시 정리한 후, 잠시 따뜻한 그들 사이에서 나왔는데 나의 눈에는 곧바로 사랑스러운 한 가족의 뒷모습이 사진 찍듯이 들어왔다. 그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 해질 정도로, 서로에 대한 온기가 오고 가는 그들을 잠시 뒤에서 지켜보았고, 괜히 뭉클해 얼른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첫 2022년을 맞이한 우리의 모습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들이 공유해준 따뜻함과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어서 참 감사했다.


집에서 바라보는 오데사의 불꽃놀이

지금까지 식전 순서, 식사, 불꽃놀이 행사까지 마쳤으니 이어서 사진 퍼레이드를 할 차례였다. 방금 전, 나름 새해 느낌 나도록 꾸민 방을 보여드릴 시간이었다. 마마와 파파는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와 금색 빛의 2022 풍선을 보고선 '글라스(좋아)'를 외치며 함께 사진 퍼레이드를 즐겨주셨다. 이때만큼 나의 셀카봉이 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나 싶다. 한국에서 사진 찍을 때 많이 애용하던 가짜 웃음 포즈를 알려드렸는데, 우린 가짜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을 나누었고, 카메라는 그러한 진솔한 모습이 고스란히 잘 담아주었다. 연속 촬영의 힘을 이용해 재빠르게 다양한 포즈로 소중한 2022년의 첫 장을 남겼다. 또, 난 눈치껏 그 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 화목한 가족사진을 여러 장 남겨드렸다. 뒤이어, M이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오니 마마와 파파만의 부부 사진까지 선물해 드릴 수 있었다. 다소 오랜만에 부부 사진을 찍게 되어서인지, 수줍어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 오지라퍼 사진작가인 나로서 하트와 포옹 등 여러 포즈를 추천해 드렸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셨지만 갈수록 점점 모델을 재밌게 즐기시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 한 편이 따뜻해졌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부부 사진, 가족사진과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살포시 낀 특별한 사진 모두 남기게 되었다. 굉장히 뿌듯했던 날이었다. 어찌 보면 작은 풍선, 트리, 그리고 몇 소품들이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사진관에서, 어느 스냅사진을 찍는 것보다도 더 값진 순간을 담았다. 사진을 남길 때 비싼 스냅사진이나 사진관에서 남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그렇게 우리의 따뜻한 밤이 또 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안녕, 2021년! 반가워 2022년!"


우리만의 사진관
뉴벤부라꼬!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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