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맞이하는 2022년 새해, 안녕
아버님의 2022년 새해 소원, peace
우리의 새해 행사는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깜빡하고 잊어버릴 뻔했던 나딸레온 케이크를 꺼내 들고 오시는 마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케이크의 등장으로 다시금 온 가족이 한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몇 개의 초를 꽂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셨던 묵묵하신 아버지께서 입을 떼시며 초 3개를 조심스레 제안하셨다. 하나의 초는 우크라이나, 다른 초는 러시아, 마지막 초는 한국으로 아버님의 소원 'peace'가 담겨있었다. 아버님의 작명 센스에 감탄하며 다 같이 'peace(평화)'를 외치면서, 초에 불을 붙이고 각자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사실, 그 당시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보다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꼭 감고 열심히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내 모습만 떠올라서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비록 정확한 의미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들의 건강과 안전, 행복을 위했던 건 틀림없다.
서로 소원을 빌고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외치고 초를 불었고, 아버님이 직접 내려주시는 차와 함께 케이크를 맛보았다. 케이크의 맛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감히 표현하려고 한다. 별다른 토핑이 없는 깔끔한 케이크였음에도 불구하고 얇은 케이크 반죽 사이로 겹겹이 쌓인 마마표 나딸레온 크림은 정말 달콤했다. 아마, 이전에 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케이크 두 조각은 더 먹었지 않았을까. 아직도 가끔, 마마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던 순간과 다 같이 모여 케이크를 음미했던 순간이 그립다. 마마는 한국에서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레시피를 알려주려고 하셨으나, 그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어떤 크림이 있는데 한국에는 아쉽게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 있었더라도, 혼자 만들 엄두는 못 냈을 게 뻔하지만 아무튼, 이제 어디 가서 좋아하는 케이크가 뭐냐는 물음에 일편단심 아이스크림 케이크만 외치던 내가 새로운 나딸레온 케이크를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아직 이길 수는 없지만..).
함께 모여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으며 평화롭게 보낸 새해를 떠올릴 때마다, 케이크의 맛도 맛이었지만 유독 아른거리는 순간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님의 소원 'peace'. 그때 그 말씀을 들었을 때도, 뭉클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파파의 한 마디가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참 착잡하다.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어 파파가, 모두가, 전 세계가 바라는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새로 생긴 나의 꿈, '집'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새해의 파티를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선물 교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갔던 작은 선물들과 차와 커피를 즐겨 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우크라이나에서 급하게 샀던 머그잔과 직접 쓴 편지를 하나씩 드렸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진한 포옹과 마마의 뽀뽀에 준비한 것 이상으로 더 큰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가족들이라도 낯간지러워서 포옹을 절대 먼저 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그 반대로 상대가 먼저 하려고 한다 해도 절레절레 뿌리쳤을 거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을 하며 여기저기서 포옹을 통해 인사를 나누는 새로운 문화가 참 신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사법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반가움을 진득하게 전해줄 수 있는 거 같다 좋은 거 같다. 특히, 마마와 파파의 포옹은 잊지 못하지 않을까. "야 루불루 바스(사랑해요)"
이날 밤, 하나의 큰 꿈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잠에 들었다. 세계의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 부담 없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원래 나의 집을 얻고 싶다는 욕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욕심이 생겨났다.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외국 친구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어졌다. 결론은 돈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돈을 열심히 모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나의 꿈,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