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M이 여행자, 나는 가이드
9개월 뒤, 다시 만난 우리
어느 날, M한테 부탁 하나를 받았다. "언니~이번에 한국 교환학생 신청해 보려고 하는데, 혹시 신청서 한 번만 봐줄 수 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둘 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올 수 있을 희망이 거의 0에 수렴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해당 대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전쟁 상황으로 인해 보류 상태이지만 일단 신청서를 보내 놓으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선 해보자는 마음으로 M은 교환학생 신청을 위해 이곳저곳 나라를 옮겨 다니는 중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해냈다. 한 달쯤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언니! 나 한국 가!"
그렇게 9개월 뒤, 추석을 함께 한국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는 M이 여행자, 나는 가이드가 되어 동네 곳곳을 구경하며 한국인의 평범한 생활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대단한 일을 하며 보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오데사에서 마샤네 가정과 따뜻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이 공원을 걷고, 예전부터 함께 찍고 싶었던 인생 네 컷과 코인 노래방의 문화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면 찾아가는 동네 뒷산으로 가족과 함께 올라가 각자 책을 읽으며 쉼을 갖는 시간도 가졌다. 이날 깨달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원래 하려고 했던 트레킹 여행을 했으면 조금 큰일 날 뻔했다. (알고 보니 M은 등산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튼, 밖에서 평소 생활해왔던 대로 일상을 보내었고 그 일상에 M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M네 동네에서 현지인들이 사는 생활을 가장 가까이 바라보며 편안함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던 것처럼, M에게도 한국의 가정생활과 문화가 한층 더 가까워졌기를 바라며 이번 여행 가이드의 역할을 임했다랄까.
여행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이드, 초대한 사람이 되어보니 여행자로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처음 보는 나를 위해서 정말 많은 신경을 써주시고,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보내다 갈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하시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M의 가족에 대한 감사함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새로 생긴 '나의 꿈, 집'을 마련하여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아주 살짝 맛보기로 꿈을 잠시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