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안녕! 오스트리아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르고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둘 다 감기에 걸려 떠나기 전 밖을 나갈 수 없어 집에서 넷플릭스로 킹덤을 보고 냉장고에 남은 식자재를 요리해 밥을 해 먹었다. 떠나기 전 비엔나 여행을 계획하다 사정 상 취소되었는데 오히려 다행이었다.
3주가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것은 우리 사이에 유머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 사이에 개그코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어른들이 '결이 맞다'라는 아주 우아한 표현을 만들어 놓으셨다. 평소에 개그우먼도 아니면서 남을 웃기는 것에 굉장히 집착하는데 이탈리아어를 공부할 때도 '식당에 가면 이런 식으로 말해서 웃겨야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재치 있는 사람이 되겠지'하며 가상현실로 언어 연습을 많이 한다.
첫 만남부터 너무 쑥스러움이 많고 나를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대해 외국에도 저렇게 선비 같은 스타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언어도 서로 원어민이 아니니 서로 웃기는 건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이 사람을 소개해준 친구가 이번에 그 친구가 사는 곳을 가면 그 친구에 대해 더 이해하고 알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내가 이 사람의 한 조각만 경험하고 정의를 내린 것이었다. 생각보다 이 사람은 개그캐(개그캐릭터)였고, 나름 서로의 시간이 쌓여서 생겨나는 우리만의 유머들이 생겨나니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불어 이 시간은 관계가 깊어짐은 물론이고 서로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고 상대방을 내 삶에 대입해 보는 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둘 다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나는 내 감을 꽤 믿는 편인데 입에서 안 나오는 이야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저 다음을 기약했을 뿐이다.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항상 남자친구이야기 뒤에 사족으로 결혼얘기가 붙는다. 나는 한 번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결혼 성사 여부를 걱정하며 현재를 망치고 싶지도 않다.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올 때 약속과 일들이 너무 많아서 전날 부랴부랴 짐을 쌌다. 이민 짐을 이렇게 단출하게 싸는 사람은 없을 거라 얘기를 들었지만 국경을 여러 번 넘어야 하니 많은 짐들이 부담이 되었다.(그래도 47kg이다) 수화물 추가도 생각보다 비싸 가서 사서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마음이 심란해서 딱히 짐을 싸면서 슬프진 않았다. 명절이라 엄마가 전통적으로 큰절을 받아보자! 하셔서 엄마, 아빠께 큰절을 올리고 나니 엄마가 봉투에 편지와 용돈을 담아 주셨다. 날이 날인지라(설 명절) 공항까지 혼자서 이동하겠다고 해서 가족들과는 집에서 인사를 나누고 터미널에 친한 친구들이 마중을 나와줬다. 그러지 않아도 섭섭한 마음이었는데 같이 엄마의 편지를 읽고 부퉁 켜 안고 터미널에서 눈물을 훔쳤다.
한 번의 이별의 코스가 더 남아 있었다. 아침 공항버스를 타기 전 같이 커피를 마시고 그는 화상 회의를 나는 나설 준비를 했다. 같이 소파에 앉아있는데 나는 또 질질 짰다. 맨 처음 이탈리아에서 헤어질 때는 사랑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안되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더해져 오열을 했고, 그가 한국에 왔다 갈 땐 눈물이 안 났다.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바로 다음날 밤 응급실을 갔다.) 이번엔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속상함의 눈물이었다.(많이 울진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그곳에 충실히 머문 것으로 나는 내 사랑을 넘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3주 전 내가 도착한 그곳에서 난 새로운 출발을 했다. 내가 들고 왔던 짐을 다시 들고 지긋지긋한 내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또 떠난다. 도대체 그게 뭐길래 내 가족도 친구도 사랑과도 이렇게 멀리 떠나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 본다. 안녕! 오스트리아 또 보자.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날엔 폭설이 내렸는데 이 날은 진눈깨비가 날렸다. 배낭에 맥주를 지고(2캔) 샌드위치를 안고 내 짐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