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BGM(배경음악)을 깔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 회사에서 '마이마이'라는 음악테이프를 휴대용으로 들을 수 있는 장치를 선물로 받았다. 그때 당시 유행하던 'SES'라는 가수의 2집을 엄마에게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 SBS가 아니라 SES야!'라고 신신당부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모든 트랙을 전부 외울 정도로 들었고, 이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1학년 까지는 가요를 귀에 달고 살았다.
노래를 전공으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집에서 연습을 했고 학창 시절 노래방에서 보냈다. 내 이 습관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 양상이 조금 바뀌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전공을 시작해서 늦게 시작한 문화적 차이를 감상으로 극복해보고자 잘 때도 성악곡이나 클래식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잤다.
몇 차례의 계기로 음원으로 듣는 것과 라이브에 많은 차이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내가 왜곡되게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일부러 안 듣기 시작했다. (내가 클래식음악에 성악이라는 장르라 그렇다. 본인이 본인의 소리를 올바로 듣기 힘든 분야다.) 그리고 당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편안히 음악 듣는 게 잘 안되었다. 집중을 해서 소리를 매일 들으니 음악을 들으면 다시 날이서고 피로해져 쉴 때까지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았다. 당시 어리고 너무 과로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외로워졌다. 영화도 드라마도 스토리가 궁금해 끝까지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써야 해서 그때부터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듣기 시작하니 어릴 때처럼 다양한 장르를 폭식하며 들었다. 옛날음악은 늘 들어왔으니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와 팝송도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다. 이때부터 음악이 다시 조금씩 재미있어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일과를 다 마치고 소파에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핸드폰으로 퍼즐게임을 하는 것이 최고의 휴식시간이 되었다. 내 안에 온전하고 고요하게 집중된 시간이었다.
이탈리아로 떠날 준비를 하며 일부러 이탈리아가요를 많이 들었다. 정서를 이해하고 싶었고, 같이 떼창을 하고 싶었다. 국민가요 몇 곡을 외워서 주목도 받고 싶었다.(웃음) 수많은 노래를 듣고 가사말을 읽다 보면 이들이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성악곡들은 가사가 시적표현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유머나 표현을 알기가 쉽지가 않다. 내가 가요를 통해 느낀 그들의 사랑은 꽤나 직선적이다.
매일 내가 라디오 DJ가 된 것처럼 내 감성과 기분에 맞추어 곡을 선곡해 주는데 아침운동에는 가사가 없는 클래식을 주로 듣고 오후에 운동을 할 땐 가요를 국적 상관없이 듣는다. 밤에는 세수를 하며 1900년대 초 미국 노래를 들으면서 엉덩이를 좀 흔들고, 자기 전엔 재즈를 들으며 술 한잔을 마실 때도 있고 대부분은 편하게 앉아있거나 누워있는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다.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예상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촉촉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성진 씨의 새로 나온 앨범을 들으며 몸을 덥히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걸으니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은 영화 같아 보였다.
때때로 BGM은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들어볼까?
요새 운동을 하며 오리 커플들을 내 핸드폰에 남긴다. 많은 커플들이 항상 다정히 생활한다. 그래서 우리 옛 결혼식에 원앙을 놓고 결혼을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