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개가 똥을 끊지
오후 5시경 Graz 시내 안에 있는 술집 겸 레스토랑
나는 술을 좋아한다. 몸에도 안 좋고 살도 많이 찌는데 왜 이렇게 멈추기가 힘든지.
술을 가장 많이 마신다는 20대에 거의 10년간 술을 쉬었던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은 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이유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였다. 일종의 수행이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거나 노래를 하는 전 날엔 절대 음주를 하지 않는데 진짜로 목이 붓고, 체력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음주 후 떨어진 체력을 극복하면서 노래를 하는 게 훨씬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나이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10년간의 단주 후 요요현상 같은 것인지 30대 초중반에 들어서서 내 음주습관은 폭음으로 이어졌는데, 이때 처음으로 블랙아웃이라는 경험을 하고 이제는 종종 기억을 잃는다.
사실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라 나 자신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 모습은 무조건 나쁘다.
내 남자친구가 거의 처음으로 배운 한국어는 꽤 고급단어인 '알코올중독자', '알코올중독자들'인데 한국인을 한국어로 웃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익혔다. 그도 술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며 우리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준 것도 술의 역할이 큰데, 술이 우리에게 용기와 분위기를 주고 이성을 마비시켰다.'한번 가면 끝가지 간다'라는 허세 때문에 나의 흑역사가 수 없이 만들어졌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삶의 우선순위에서 아직 술이 1등을 차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개가 똥을 끊지'라는 생각으로 술을 안 마실 거라는 장담도 못하겠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미 이주 째 접어들었는데 내가 도착하고 같이 휴식하기 위해 그는 짧은 3일의 휴가를 냈고 이때 한나절의 슬로베니아 여행을 했다. 카페에 앉아 스무디를 마시며 백조멍을 하고 슬로베니아 전통음식을 먹었다.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하이킹까지 하고 그라츠로 다시 돌아왔다.
삼면이 바다에 북쪽에 북한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태어난 나는 기차를 타고 30분만 가도 외국이라는 사실이 낯설다. 수프처럼 보이는 음식은 우리의 국밥 같은 존재인데, 보리쌀이 말아져 있고 은은한 카레맛이 났다.
사실 둘 다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가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땐 우린 서울-원주-제천-단양-경주-통영-여수-전주-예천-인천의 엄청난 코스를 11일 동안 격파했다. 오스트리아에 오기 전 나는 그에게 절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이번의 짧고도 긴 약 20일의 기간은 단지 삶을 공유하고 싶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매일 재택근무를 하고 나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일어나는 시간에 똑같이 일어나 집을 정돈하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그가 일을 마치면 간단한 산책과 함께 장을 본다. 7시만 넘어도 술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집에서 놀거리를 찾아본다. (집에서 열심히 고스톱을 치게 된 계기이다.)
나는 작은 시간적 여유만 나에게 주어져도 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갔었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뛰쳐나가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술이라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아주 중요한 촉매제로 사용했고, 거기에 노래방까지 더해지면 한국인의 흥은 완성이 된다. 새벽까지 비틀거리면서 벽을 더듬어 집을 찾아가야 이 사건은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다.
프리랜서이다 보니 스스로 들볶으면 수익이 더 생기고 미래가 준비될까 싶어 자꾸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어지곤 했다. 4년 동안 해수욕을 한 번도 못했다. '올해는 꼭 해야지'하고 그게 뭐라고 한 시간 반이면 바닷가를 갈 수 있는데도 못했다. 보장이 되지 않는 삶이다 보니 나의 휴식의 여부를 내가 정할 수 없었다.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경력이나 경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결국엔 자아실현이나 수익으로 연결이 되면 '사생활'이라는 배부를 소리를 하지 않고 즐겁게 뭐든지 했을 것이다.
음악대학졸업 후 모두가 하는 일반적인 일들도 물론 많이 했지만 누구를 위해 했는지 모를 어리석은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내 마음에 억울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말걸. 아직도 내가 10년간 단주했을 때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름의 큰 희생을 하는 것이 과연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내 손에 성공을 쥐어다 주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작은 음악과 함께 엉덩이도 한 번씩 흔들며 일을 하는 그는 행복해 보인다. 항상 허세로 대단한 것을 쫓다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행복을 놓친다. 다음번엔 나의 부족함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내 궁둥이를 두들기며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