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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떠나서(5)

ep. 5 허영심과 우아함의 한 끗 차이

by 에미꾸
<Kunsthaus Graz_쿤스트하우스 그라츠>에서 열리고 있는 'POETICS OF POWER_권력의 미학(시학)'의 제목을 가진 전시를 보고 왔다. 권력이 주는 달콤함과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일어하는 문제들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 무척 현대적인 전시다.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나는 잔잔하게 돌아(?) 있었는데 스스로를 미래의 예술가라고 생각하곤 했다. 예술가는 응당 전시회를 즐겨야 하는 사람이므로 친구들과 종종 혜화에 가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거나 대학교 졸업 공연이나 미술 전시들도 즐기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귀여운 허세와 허영인데 36살이 된 나는 80살이 된 내가 귀여워할 허세를 잔뜩 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쌓은 허영은 20대가 되니 나름 우아한 취미가 되어 있었는데 친한 친구가 나와 취미까지 맞아 서로 느끼는 예술적 견해를 나누고 멋진 어른이나 삶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다. 이것도 10년이 지나고 나니 친구와 나는 이제 우리를 '육갑 떠는 사람'이라 자칭하고, 무언가 우아한 행위를 하기 전 '육갑 떨러 가자' '육 갑 한번 떨자'라고 얘기한다. '육갑'의 사전적 명의는 남이 하는 언동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고, 육갑하다가 바른 표현이다.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는 '지랄하다'가 있다. 우리의 표현은 사실 전혀 단어적 뜻에 맞지 않고, 문법도 틀린데 이 단어보다 좋은 뉘앙스를 아직 찾지 못했다.


30대 미혼여성이 떨어야 될 '육갑'에서는 와인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분위기를 챙기며 와인도 함께 마셨고, 대화의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멋진 어른의 삶이 아니라, 현재의 건강상태나 인간관계를 거쳐 '어떻게 하면 인간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1인분인 사람)'로 바뀌었다. 멀리서 지켜보면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나는 나 자신을 허영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솔직한 어른으로 말하고 싶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 교양과 영혼을 아름답게 채우려 했던 나의 행동과 대조적으로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셀카를 찍는 횟수가 줄어들고 스스로 내 삶을 야박하게 평가하며 생채기를 내는 것이 어느 날 너무 서글퍼서, 나는 '내가 나랑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이렇게 까지 사랑하겠어'라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자존감 지킴이'가 스스로 되어 주고 내 친구들에게도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 주고 싶다. 1년만 지나도 과거의 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 예쁜 과거가 슬프지 않도록, 내 청소년기의 귀여운 노력이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튼튼한 다리역할을 해주고 싶다.


'허영심'을 사랑과 돈으로 보살피고 가꿔서 언제가 우아하고 솔직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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