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잘 먹고 잘 살기_(!주의! 배부른 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인데'라는 이 유명한 문장은 한국인 중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진짜 지금은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다른 호화스러운 생활을 할 여유가 안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것이 나에게 하나의 취미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빠는 평생 총각 때 몸무게를 유지하시는 분이시고, 스포츠 마니아이신데 거의 선수급이셔서 아직도 엄청나게 바쁘게 사신다. 골프 이외에 거의 모든 구기종목을 섭렵했다고 보면 되는데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아빠가 각종 대회에서 받은 종목별 메달이 한가득 있었다. 아빠는 미식가이지만 배가 부르면 수저를 바로 내려놓으시는 분이신데 불행히도 내가 아빠를 닮았어야 했는데 남동생이 아빠 판박이이다. 나는 엄마를 닮았는데 여동생도 엄마를 닮아 세 모녀가 함께 몸무게 관리에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세 모녀는 음식에 대한 탐구심이 강하고 뭐든지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다. 가족끼리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상추쌈에 애벌레가 붙어 있어도 벌레를 털고 먹는다. (아빠는 이날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 아빠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먹는데 돈 쓰고 빼는 데 돈 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들이기 때문에 항상 맛있는 것을 알려주시고 사주신다.
희한하게 성악을 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요리를 수준급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친구와 요리 연구를 한다. 이제 그 친구와 시차 8시간 거리에 있으니 저절로 살이 빠질 것이라고 주변에서 얘기했는데 아직은 서로를 못 놓아준 것 같다.
그라츠에서 해먹은 요리들 한식, 양식, 퓨전요리로 다양하게 해 먹었다.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서 식당에 가지 못했다. 혹시라도 궁금하실까 TMI로 메뉴를 알려드리면
(상하좌우 방향으로) 1. 이 지역 전통음식인 라클렛에 삼겹살을 곁들임 (삼겹살 밑에 오븐처럼 치즈나 야채를 구워 먹는 판이 있음) 2. 직접 담근 김치로 김치찜 3. 전주비빔 삼각김밥맛 스타일로 양배추를 넣고 말은 김밥과 중국당면을 넣은 찜닭 (남자친구의 생일파티 음식이라 외국인의 입맛에 맞춰 빨간색을 토마토와 쌈장으로 냄) 4. 특산품 호박씨 페스토를 넣은 펜네(파스타 이름) 5. 우동사리를 넣은 매운 등갈비 찜 6. 샤워크라우트(양배추 초절임)를 이용한 오코노미야끼 스타일의 부침개 7. Bolzano(볼차노) 지역 전통 빵과 모차렐라치즈 콘 샐러드, 살라미와 프로슈토, 각종 치즈들 8. 토마토 파스타 9. 일본식 카레와 내 김치 10. 크뇌델(비트를 갈아 계란과 향신료 작은 빵조각을 섞은 뒤 뭉쳐서 찜기에 찜)과 고르곤졸라 치즈 베사멜 소스 11. 부대찌개 12. 두 번째 김치 13. 또 라클렛 (이번엔 목살과 두부를 곁들인) 14. 토마토소스 치즈 떡볶이
심하게 먹고만 사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내 글의 취지가 대나무 숲에 얘기하듯 솔직한 나의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기 이므로 내 식소식을 나누어 본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리를 준비해서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을 때의 만족감이 훨씬 크기 때문에 자꾸 중독적으로 요리게 빠지게 되는데 선생님 중 한 분이 무언가를 정성껏 준비해 내놓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서는 것과 비슷해 많은 음악가들이 요리를 즐긴다고 얘기해 주셨다. (이렇게 포장해 본다.) 본 업은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상대적으로 실수해도 대미지가 적은 부업(?)에서 자꾸 만족감을 찾는 걸까.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노래를 전공으로 할 것이라는 상상도 못 했다. 연기전공으로 대학 입시를 위해 특기로 선택한 성악이 (이 당시 뮤지컬 시장이 커지기 시작) 내 전공이 되고 아직도 공부를 이어가고 있듯이 지금 좋아하는 이 요리가 언젠가 또 내 삶에 끼어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