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끝나면 복기를 하듯이, 그와 인연이 끝이 나면 하는 연애 복기
2년 전 봄날에도, 올해 봄날에도 여전히 이별 중이다. 그의 세상으로 가득 찼던 마음을 돌려주고 있는 중이다. 내 사랑이 시작되면 그와 단둘만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삶과 사랑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그 사람에게 물드는 게 내 연애 방식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떠나보낼 땐 세상을 무너뜨려야 한다. 둘만의 세상에서 나의 세상으로 다시 지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나는 복기를 한다.
바둑의 세계에 복기가 있다. 이미 끝난 바둑의 승부를 바둑판 위에 그대로 재현하면서 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복기를 통해 실력을 성장시킨다고 한다. 나의 연애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기억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후회와 미련이라는 파도가 덮친다. 그 기억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잘 보내주기 위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본다.
# 복기 1.
하늘이 파아랗던 주말. 우리는 전주로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남원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왔다. 잠시 들려서 광한루도 구경하고 가면 좋을 거 같다고 말을 하였다. 그는 광한루를 잘 모른다고 하였다. 모를 수 있는 것이고, 모르는 천천히 알려주면 되는 것인데 나는 그를 타박하였다. 말을 하고 후회하였지만 벌써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저녁에 그가 말했다. 나를 만나면서 자신감이 없어진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 테이프들이 빠른 속도로 되감아졌다. 그날 하루 만의 일이 아니었단 걸, 그를 존중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들이 스친다.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꾹 참고 있었던 그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더 존중해 주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 복기 2.
최근에 그의 주변에 많은 일들이 있어 힘들어하였다. 그에게 위로가 필요했다. 나는 나의 존재로 충분히 그를 위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다른 무엇인가 필요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였다. 왜 나로 채워지지 않을까? 왜 나에 대한 배려는 없을까? 이 일을 계기로 우린 멀어졌다. 그리고 시간의 고개를 넘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왜 화가 났을까? 그래 그와 나의 삶을 동일시하였다. 우리 부부가 아닌 연인이었다. 그만의 공간을 나의 공간이라 착각하였다. 내 공간을 나누어야 한다는 기분이 싫었던 것이다. 그의 잘못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나의 착각으로 만들어 낸 감정의 무덤이지 않았을까
그를 떠나보내고 돌이켜 보는 순간들. 그 속에서 나를 살펴본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고 후회하는 서툴렀던 나. 내 사람을 먼저 살펴주지 못한 어리숙했던 나.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해 본다. 희미해졌을 그의 기억 속 순간에 찾아가 용서를 구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미안함과 그리움을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떠나보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