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의 품격
장례식장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한산했지만 끊이지 않았던 조문객들.
“당연히 와야지.”
그 말이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순간도 있었다.
조문을 위해 놓아둔 국화를 찾지 못한 누군가는
장례식장 화환 바구니에 꽂혀 있던 국화 한 송이를
대차게 뽑아
영정 사진 앞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잠깐 웃음이 터졌고
그 덕에 우리는 잠시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조문은 슬퍼하는 방법의 경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유난히 오래 남는 말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 편해지셨겠네.”
“그래, 너도 이제 좀 살겠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이 말들은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편해진 건 엄마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에는
타이밍과 거리가 있다.
너무 앞서가도,
너무 멀어도
위로는 상처가 된다.
기억에 남는 조문은
의외로 거의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켜주다
조용히 돌아가던 사람들.
먼저 울어주던 사람,
손을 잡아주던 사람,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던 사람의 품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보다
‘같이 있어주는 것’ 자체로
조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침묵조차
조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이것이
조문의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문은
위로라기보다
존중에 가깝다.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평가하지 않고,
정리하려 들지 않고,
앞날을 대신 낙관해 주지도 않는 태도.
그저
“나는 네 슬픔 옆에
잠시 서 있을게.”
라고 말해주는 것.
조문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의 문제라는 걸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엄마가 평생 좋아했던 바다,
소리와 숨결만 남아 있는 그곳으로
엄마를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엄마는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