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늦은 독립

엄마의 마지막 집

by 오레오레오


1년 전, 나는 엄마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가 항암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였다.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고민도 커졌다.

외래 진료를 위해선 엄마가 서울에 계시는 편이 좋았는데 우리 집은 불편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엄마의 집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집에서 가깝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면서

깔끔하고 안전할 것. 이 조건에 맞는 곳을 찾으려고 여러 날 발품을 판 끝에 까다로운 조건에 딱 맞는 곳을

찾게 되었다. 서둘러 계약을 하고 엄마에게 집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을 때 빛이 나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난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의 독립 준비를 시작했다.

'이불은 가벼운 게 좋더라'

'밥솥은 클 필요 없다'

'밥그릇, 국그릇은 두 개면 충분하다'고 말하던 엄마.

하지만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살림살이는 생각보다 많았다.

수건, 세탁세제, 고무장갑 하나까지 엄마와 함께 고르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가족과 함께 살던 엄마는 정작 자신만의 살림을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요양병원을 떠나 이사하던 날,

엄마가 1년 가까이 지내던 요양병원 407호의 옷과 살림살이는 내차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짐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던 나와 달리 엄마는 너무도 홀가분하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산뜻하게 병원을 나섰다.

남편과 미리 쓸고 닦아 놓은 엄마 집에 들어서던 순간.

집은 아담했지만 엄마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밝고 의욕이 넘쳤다.

엄마의 인생에서 결혼 이후 진짜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론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쳤다.

엄마가 건강할 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일찍 가까이에서 엄마랑 이렇게 지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손끝 야무진 엄마의 손길이 닿은 엄마 집은 그렇게 온기를 찾고,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집은 이제 없어졌지만

엄마가 처음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되던 날의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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