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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Sep 30. 2015

시종일관(始終一貫)

Rice에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

한 시간 동안을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Damien Rice라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의 1집을 들었다. 
요즘 내가 한창 빠져있는 목소리다.


전에는 좋아하는 가수 혹은 좋아하는 앨범이 늘 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싸이월드 BGM에 수시로  업데이트해야만 할 정도로 많았다. 근래에는 누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답해야 할 것 같다. 올 가을엔 자꾸 누군가의 목소리에 빠지고 싶은 걸까, 한 동안 안 듣던 노래들을 일부러 찾아 듣게 된다.  


요즘엔 오로지 음악을 듣는데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싶다. 무엇을 하든 멀티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음악을 듣더라도 메일 확인이라도  함께해야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아주 진하지만 천천히 차오르는 희열 같은 것은 왠지 이 바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을은 느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속곤 한다.  한 번에 두 가지 세 가지씩 해내야만 능력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먹을 때도 tv를 보면서 먹고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시고 단체 카톡방의 대화를 확인해 가면서 한다. 그리고는 점심에 먹은 국수 가락이 쫄깃했는지 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어제 만난 친구가 한 이야기의 요지는 물론 기억나지만 그녀의 새로 산 머플러의 색이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이었는지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었는지는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뭐 중요한 일이냐고 반문하게 되지만, 그럼 도대체 중요한 게 뭘까. 순간 순간을 제대로 누릴 때만 알 수 있는 것들, 어느 하나에 집중하고 온 마음을 쏟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삶의 수 많은 빈틈을 메워주어 찬 바람을 막아준다는 것을 나는 자꾸 잊게 된다.


나는 오늘 오후의 한 시간을 Damien Rice의 노래를 들으며 그 사람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바람 소리와 기타 코드 바꿀 때 왼손이 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멀티태스킹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 기타 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아 언제든 다시 그 소리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저녁식사 준비를 할 시간이다. 밭에서 지금 막 뽑아온 배추를 서걱서걱 잘라 된장국을 끓이고 올 가을 마지막 가지를 볶아 상에 올려야지. 그리고 한 상에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기도를 해야겠다. 그리고 오롯이 밥에 집중해야지. 
하하. 난 밥이 참 좋아~

(시작은 음악(Rice씨 노래)이었으나, 결론은 밥이 좋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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