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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은 고사하고

95세 할머니가 캐다주신 고들빼기로 담근 김치를 먹는 요즘.

by 지우개연필

나는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산다. 환갑은 고사하고 칠순잔치를 해도 노인으로 잘 쳐주지 않는 마을이다 보니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보다 곱절의 인생을 사신 분들이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70여 년의 세월에 담긴 그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종합사회복지관에 주기적으로 가서 혈당과 혈압 측정해 드리고 간단한 건강상담을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대략 일 년쯤 된 것 같다. 그리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읍내에서 먼 마을 노인회관으로 서비스팀이 찾아가는 '찾아가는 복지관' 프로그램에 동행한다. 보건간호사로서 내 나름의 지역사회 보건향상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고나 할까. 사실 간호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 나름대로는 내가 간호사인 것을 잊지 않기 위한 한 방법이면서 말만 그럴듯하고 구호만 넘쳐 나는 죽은 삶이 아니라 실천하는 인간이 되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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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또 한 번의 '찾아가는 복지관'을 다녀왔다.

매니큐어도 발라 드리고, 사진 봉사도 있다. 요즘은 영정사진이란 말 대신 효도사진, 장수사진, 황혼사진이라고 부른다. 사진 찍기 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께서 전문 메이크업을 해주시는데, 나도 받아보고 싶을 만큼 잘 해 주신다. 10년은 젊어 보이게 웃음치료와 식사 대접하는 사진은 없다. 나도 먹느라 바빠서.


내 임무는 여기서도 혈당, 혈압 측정이다. 사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이런 행사가 저 분들의 삶의 질 향상에 무슨 큰 도움이 되겠나 싶었지만 막상 찾아가면 얼마나 고마워하시고 좋아하시는지, 오히려 더 드릴게 없어 죄송할 지경이 되어 돌아온다. 잠깐씩의 봉사활동을 통해서도 느끼지만, 주위에서 늘 뵙는 동네 어르신들을 보아도 노인분들이 가장 좋아하고 고마워하시는 것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와준다'는 것이다. 건강한 분이든 아픈 분이든, 친하든 아니든 하여튼 모든 노인들은 찾아와주는 것에 늘 감격하신다. 참 왜 그런지 모르게 뭉클해지는 지점이다. 자식들, 손주들에게 모든 관심이 가 있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면, 그게 그렇게 고맙고 좋으신 거다. 너무 고마워하셔서 가끔 죄송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더 관심을 갖고 챙겨 드렸나 돌아보게 된다.


늘 젊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내가 평균 연령이 70대인 분들 사이에서 살며 때로 친구들 곁에서는 못 배울 것 같은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광복의 아침을 맞이해보신 분들,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지나오신 분들과 살다 보면 참 그렇다. 요즘 들어 많이 드는 생각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것. 할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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