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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Sep 30. 2015

계란 프라이꽃을 보다.

개망초야, 맘대로 이름을 바꾸어 미안하다.

정말 잘 부친 계란후라이

내 동생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열 살도 채 되기 전쯤부터 이 꽃을 [계란 프라이꽃]이라고 불렀다.
이 꽃의 진짜 이름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개망초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에게 이 꽃의 이름은 계란 프라이꽃이면 충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남동생과 나는 3년 정도 서울에서 함께 자취를 했다. 그 3년이 지나고 난 후 한두 달 차이로 나는 결혼을 했고 동생은 호주로 떠났다. 아주 작은 방 두개가 있는 집에서 날마다 얼굴을 대하며 살았지만 내 기억에 나는 동생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는 때는 있었어도 서로 삐치거나 서운하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기억이란 것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여하튼, 기억상으로는.)


나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동생 방에 들어가 과제를 하고 있는 동생 옆에 앉아 하루의 일들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곤 했다. 신나는 일들도 있었을 테고 가끔은 짜증 나는 일도 있었을 테지만 동생과  이야기하는 그 시간만큼은 뭐랄까, 엘리스가 따라 들어간 토끼굴 속 같은, 이상한 나라의 폴이 인형을 따라 들어간 멈춰있는 시간 속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과 시간의 틈 사이에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시간.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범한 시간이었다. 그 녀석은 늘 과제가 있었고 나는 늘 할 이야기가 있었다.

동생의 과제를 들여다보며 이 빨강보다는 저 빨강이 낫다는 둥, 글씨체를 바꾸라는 둥 참견도 해가면서 동생의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가끔 치킨을 시켜서 뜯기도 하고 때로는 방울토마토를 톡톡 터트려 먹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을 가지게 될 날이 언제인가 손꼽아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우리 집 뒤뜰에는 계란 프라이꽃이 가득 피어 더욱 그 날을 기다리게 만든다. 어디에서도 이렇게 많은 계란 프라이꽃을 보지 못했는데, 가끔 나는 빨래를 널다가 저 꽃들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붉어진 눈시울로 방에 들어가면 남편은 무슨 일 있냐며 눈이 동그래지고 그럼 나는 멋쩍게 '동생 놈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 꽃씨를 누가 다 뿌렸을까.


3살 이후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내 동생. 지금은 시드니 어디쯤에서 또 과제를 하고 있을 내 동생. 오늘 빨래를 개다가 또 계란 프라이꽃을 한참 본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시드니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본다. 당장 내일 시드니행 비행기에 올라 저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처럼 배낭은 이미 다 싸 놓은 것처럼 아주 자세히 본다.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그 지하철 노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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